82. 사랑은 순수하게, 결혼은 계약으로 ♬

<인문학 스캔들>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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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영감으로, 교감은 예술로! 예술가들이 만든 사랑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여행, ‘책이 있는 풍경’에서 내놓은 신간, <인문학 스캔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남긴 사랑의 흔적을 만납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1929년에 처음 만났다. 당시 사르트르는 수재들만이 갈 수 있는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철학교수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24세의 청년이었고 보부아르는 소르본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은 후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미모와 지성을 갖춘 재원이었다.

처음부터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연인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보부아르의 남자친구 마외가 있었는데 그는 사르트르와도 친구 사이로 함께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르트르가 마외를 제치고 보부아르의 마음을 훔치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평균 키보다 머리 하나만큼 작은 데다 촌스런 뿔테 안경을 쓰고 한쪽 눈이 사시인 이 볼품없는 청년은 다른 남자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지적인 예리함, 풍부한 지식, 유머감각을 무기로 소리 없이 보부아르에게 다가왔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그해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나란히 합격했다. 사르트르가 수석, 보부아르가 차석이었다. 보부아르나 그 친구들은 언제나 사르트르를 이길 수 없었다. 사르트르의 별명은 천재였다. 보부아르는 언제나 풍부한 지식과 창의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사르트르의 매력에 이끌렸다. 물론 사르트르 역시 지적이고 아름다운 보부아르에게 매료되었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지식의 훌륭한 반려자”로 여겼고, 사르트르는 보부아르를 “완벽한 대화 상대자”라고 칭했다. 다른 어떤 남자와 여자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를 대신할 수 없었다.

시험이 끝난 뒤 두 사람은 부쩍 가까워졌지만, 보부아르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 달 동안 떨어지게 되었다. 사르트르는 보부아르가 가족들과 머무는 메리냐크로 찾아갔다. 그리고 너무나 지적인 이 둘이 너무나 원초적으로 메리냐크 들판에서 처음으로 한 몸이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불타올랐다. 사르트르는 군 입대를 앞두고 보부아르에게 청혼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보부아르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사르트르는 다른 방법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어느 날 오후 함께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하다가 루브르 박물관 한쪽에 있는 돌 벤치에 앉았을 때였다. 주변에는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 2년간 계약을 맺읍시다.”
“계약이라뇨?
“계약결혼 말이오. 서로가 서로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존중하면서 사랑할 수 있는 계약조건을 만듭시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면서 함께 사랑하고 또 함께 살아가는 것이오.”
“좋아요.”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사랑했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고 가사 일에 매몰되어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사르트르 역시 보부아르를 사랑했지만 아이를 낳아 기성세대의 권위를 앞세우며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계약결혼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계약조건이 뒤따랐다.

첫째, 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서로 허락한다. 상대방이 다른 사람과 사랑할 권리를 인정 하는 것이다.
둘째,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
셋째,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한다.

이러한 조건에 동의한 두 사람은 계약 부부가 되었다. 21세기의 시각으로 봐도 평범하지 않은 결합이니, 1929년의 프랑스 사회에서는 얼마나 더 파격이었겠는가. 특히 여성인 보부아르에 대해서는 더 큰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여성들에 대한 교육이란 현모양처가 되기 위한 교육이 보편적이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계약결혼은 처음엔 친구들과 대학가에서 화제가 되다가 그들이 사회적 명성을 쌓아갈수록 더 큰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기의 결혼으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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