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그림을 그리는 여자, 그녀를 담아낸 남자 ♬

<인문학 스캔들>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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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영감으로, 교감은 예술로! 예술가들이 만든 사랑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여행, ‘책이 있는 풍경’에서 내놓은 신간, <인문학 스캔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조지아 오키프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남긴 사랑의 흔적을 만납니다.

미국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는 꽃과 사막의 화가로 불린다. 여류 화가는 남성에게 종속된 부차적 존재로밖에는 인정받지 못하던 100년 전, 그녀는 미국 화단에서 여성적인 정체성과 그림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한 예술가다. 그녀는 서유럽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지 않은 독자적인 추상환상주의 이미지를 개발하여 20세기 미국 미술계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했다. 그런 그녀의 예술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산타페에서 23세 연하 청년과의 마지막 사랑을 누리는 10년이 그녀의 예술 인생 마지막 지점을 차지한다면 그녀의 예술 인생에서 시작 지점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와 보낸 시간이었다.

1916년 새해. 뉴욕 ‘291(이구일)화랑’의 주인이자 유명한 사진작가인 스티글리츠는 낯선 소묘 몇 점을 앞에 두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그림들은 조지아 오키프라는 무명 화가의 것이었고, 그것을 들고 나타난 이는 오키프의 친구 폴리처였다. 오키프는 폴리처에게 “스티글리츠가 내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작품이 가치가 있는지 그에게 보여주고 싶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그림을 대신 보여주라고 부탁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폴리처는 친구의 그림을 들고 291화랑을 찾아갔다.

조지아 오키프는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컬럼비아에서 미술교사로 일하며 생계를 해결하며 어렵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교사 일을 그만두고 그림에만 전념할 수 없어 괴로워하면서도 그녀는 시골의 자연에 묻혀 평생 트레이드마크가 될 꽃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이 친구 폴리처를 통해 291화랑의 스티글리츠 눈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주홍색 코스모스와 자주색 피튜니아 꽃을 담은 파스텔화와 소묘 등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스티글리츠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제야 진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여자가 나타났군요. 이 그림을 그린 이는 보통 여성이 아닙니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통이 크면서도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입니다. 이 그림들은 제가 그동안 보아온 것들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작품들입니다. 언젠가 꼭 이 사람의 전시회를 열고 싶군요.”

극찬이었다. 폴리처는 화랑 주인 스티글리츠의 말을 친구이자 무명 화가인 조지아 오키프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다. 유명인사인 스티글리츠에게 재능을 인정받은 오키프는 한껏 고무되었다. 지금은 뉴욕이 현대미술의 주 무대가 되었지만, 당시 예술의 중심지는 유럽, 그중에서도 파리였다. 스티글리츠는 자신이 운영하는 291화랑에서 미국 최초로 마티스, 몬드리안, 브라크, 피카소와 같은 유럽 화가들의 작품전을 열고 현대미술을 본격적으로 미국에 소개한 인물이다. 그는 또 그림을 사고파는 화상(畵商)이기도 했다.

명석한 통찰력으로 재능 있는 가난한 예술가들을 열렬히 지원했던 그는 뉴욕 예술가들의 영웅이나 마찬가지였다. 오키프 역시 스티글리츠를 예술적 멘토로서 흠모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스티글리츠에게 인정을 받은 오키프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그에게 정성스러운 편지를 보냈다. 시골뜨기 여교사이자 29세의 화가 지망생이 쓴 편지에 뉴욕의 성공한 52세 남자가 화답함으로써 두 사람의 교감이 시작되었다.

“제 그림을 보신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그림이 왜 좋은지 기억 하신다면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그림으로 말하려고 했던 것을 이해하신 것 같아서요.”

“작품에서 느꼈던 것을 글로 표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직접 만나 인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전할 수도 있겠지요. 당신의 작품이 제게 큰 기쁨을 주었다고 말하고 싶군요. 정말로 놀라웠소. 자신의 내면을 진정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소.”

두 사람은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직접적인 만남이 이뤄진 것은 몇 달이 지난 후 스티글리츠가 허락도 받지 않은 채 그녀의 그림을 ‘버지니아 오키프’라는 이름으로 291화랑에 전시했을 때였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오키프는 곧바로 스티글리츠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전시는 끝난 다음이었다.

“허락도 받지 않고 맘대로 내 그림을 전시하다니, 얼마나 화가 나는 줄 아세요?”
“아, 미안하오. 나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니 진정해요. 당신 그림은 더 많은 사람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기에 아까운 생각이 들어 전시를 한 것뿐이오. 난 당신 작품을 아끼는 마음에서 사진까지 찍어두었소. 이것 보시오. 당신 작품을 담은 내 사진을!”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오키프의 작품들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얼굴을 붉힌 첫 대면 후 두 사람은 서서히 가까워졌다. 스티글리츠는 1917년에 291화랑에서 오키프의 첫 개인전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그 무렵 연인이 되어 동거에 들어갔다.

시골뜨기 교사에 불과했던 오키프는 돈 걱정 없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과 작업실, 그리고 자신의 작업을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스폰서를 얻었고, 당대 유명 인사였던 스티글리츠는 남다른 매력을 지닌 아름다운 피사체인 동시에 젊은 애인이자 예술적인 동지를 얻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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