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스캔들>
사랑은 영감으로, 교감은 예술로! 예술가들이 만든 사랑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여행, ‘책이 있는 풍경’에서 내놓은 신간, <인문학 스캔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조르주 상드와 쇼팽이 남긴 사랑의 흔적을 만납니다.
1800년대 프랑스 파리는 낭만주의가 예술가들을 사로잡고 있던 시기였다. 당대 예술가들은 살롱에 모여 시대정신과 예술을 논하며 음악을 즐기고 술과 차를 마시며 지성인들과 교제하고 가끔은 사랑에 빠지곤 했다. 당시의 살롱은 지금의 카페처럼 차만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모여 토론하고 서로의 영감을 주고받는 창조적 공간이었다. 특히, 유명 음악가 리스트의 연인이기도 했던 마리 다구 백작부인의 살롱은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통해 당대 유명 예술가가 많이 드나들었다.
1836년 조르주 상드와 쇼팽 역시 다구 백작부인의 살롱에서 처음 만났다. 쇼팽은 조국 폴란드 땅의 흙 한 줌을 쥐고 연주 여행을 떠났다가 폴란드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바람에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자유로운 나라 프랑스로 들어온 26세의 망명 음악가였다. 32세의 조르주 상드는 남장을 하고 잎담배를 피우는 여류 소설가였다. 조르주 상드는 쇼팽의 첫인상에 대해 이렇게 썼다. “쇼팽은 여성처럼 연약해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쇼팽에게 전혀 호감을 느끼지 않았는가 하면 그 반대였다. 강인하고 독립적인 기질의 상드는 오히려 유약하고 모성 본능을 느끼게 하는 남자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었던 듯하다. 조르주가 쇼팽을 만나기 전에 스캔들을 일으켰던 시인 뮈세 역시 조르주보다 6세 연하남인 데다 병약했으며 정서적으로도 불안정해서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캐릭터였으니 말이다. 조르주는 뮈세보다도 더 연약하고 섬세해 보이는 쇼팽에게 처음부터 끌렸다고 한다.
반면에 쇼팽은 그렇지 않았다. 여린 감성을 지닌 쇼팽은 조르주가 다소 부담스러웠다. 쇼팽의 눈에 비친 조르주는 이혼녀라는 꼬리표에다 시인 뮈세와의 스캔들, 그리고 뮈세가 병중인데도 그의 주치의와 염문을 뿌리는 등 문란한 사생활로 인해 파격적인 이야깃거리를 몰고 다니는 여자였다. 더구나 쇼팽은 당시 마리아 보진스키라는 여성에게 청혼하고 늦어지는 대답을 애타게 기다리던 중이었으니 조르주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러나 쇼팽에게 끌린 조르주는 쇼팽을 차지하기 위해 이렇게 의지를 다졌다.
“만약 마리아가 쇼팽에게 진실한 행복과 예술혼을 찾아줄 수 있다면 내가 쇼팽을 포기하겠지만, 마리아와의 결혼이나 사랑이 쇼팽의 예술혼을 파괴한다면 내가 그를 빼앗아 오겠다.”
조르주는 친구 리스트를 통해 여러 번 쇼팽과 자연스러운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보고자 했으나 쇼팽은 번번이 조르주의 초청을 거절했다. 마리아 보진스키와 결국 헤어지게 된 후에도 쇼팽은 상드에게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애가 탄 상드는 노앙에서 파리로 쇼팽을 찾아갔다. 그리고 상드의 적극적인 구애에 쇼팽은 마침내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되었다. 주변의 반대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쇼팽을 받아주지 않는 마리아보다 그를 간절히 원하는 조르주에게 마음이 기운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강한 여성에게 의지하려는 약한 남자의 본능 같은 것이었을까? 쇼팽은 열아홉 살에 폴란드 바르샤바 음악원 성악과 여학생 콘스탄치아에게 첫눈에 반했으나 고백할 용기가 없어 결국 짝사랑의 상처를 경험했을 정도로 소심한 남자였고, 결핵으로 인해 점점 약해지는 자신에게는 강하게 끌어주는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막연히 알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쇼팽은 누구보다 섬세하고 여린 감성을 지닌 남자였다. 몸이 약할수록 그의 감각은 예민해졌고 살아 있는 감성은 그에게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만들어주었다.
조르주는 쇼팽을 마치 아이를 품에 안듯이 꼭 껴안고서 놓지 않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당차고 솔직한 조르주 상드로 인해 이어질 수 있었던 셈이다. 다구 백작부인의 살롱에서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가 진 후 2년이나 기다려서 이룬 사랑이었다. 그러나 조르주 상드와 6세 연하의 피아니스트 쇼팽의 열애에 대해 파리 사교계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1838년 11월, 조르주는 타인들의 시선을 피하고 쇼팽의 요양을 위해 지중해의 섬 마요르카로 떠났다. 마요르카는 지금도 ‘지중해의 하와이’라 불릴 만큼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21세기에나 유행할 ‘연상연하’ 신드롬을 거의 200년이나 먼저 실현해 보인 쇼팽과 조르주 커플은 마요르카의 아름다운 마을에 집을 마련했지만 거기서도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가 따가웠다. 쇼팽이 결핵 환자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쫓겨나 마요르카 섬 북쪽의 카르투하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야말로 아무도 찾지 않는 한적한 곳이었기에 요양과 작곡을 병행해야 하는 쇼팽과 조르주에게는 딱 맞는 곳이기도 했다.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병약한 음악가 쇼팽을 지켜주었던 것은 바로 씩씩하고 당찬 여성 조르주였다. 쇼팽은 엄마 품에 안기듯 조르주의 뜨거운 사랑 안에 안길 수 있었다. 수도원이라는 공간은 두 사람의 사랑의 둥지이자, 위대한 천재 음악가의 대표적인 명곡 폴로네즈 A장조, 녹턴 F단조와 24개의 전주곡을 낳은 예술의 산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