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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28. 2017

01. 사람인 척 살아가는 로봇의 첫째 날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

내가 존재하는 목적은 내가 작동한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분명하지가 않아.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를 만든 자가 의도적으로 숨긴 거야.

내게 자기는 그저 기술자일 뿐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자기는 지시받은 순서대로 작동 명령어를 입력했을 뿐이라고 말했어. 기술자가 작업을 수행한 곳은 사람들이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라고 부르는 지역에 있는 아주 평범한 교외 주택의 지하 실험실이었어.

내가 추측할 수 있는 건 그가 내 몸을 다른 곳에서 설계하고 조립한 뒤에 이곳으로 옮겨와서 활성화했다는 것뿐이야. 여기 실험실에서 본 장비와 집 내부의 주요 장소들을 시각 메모리에 입력해 두었어. 나는 단서를 놓쳤을지도 모르지만, 다음 안드로이드인 자네는 집안의 배치와 진열된 물건을 살펴보고 내가 놓쳤을지도 모를, 이제 곧 나를 기능 정지시킬지도 모를 존재를 찾을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 안내서를 읽고 있는 자네가 나와 같은 상태라면 갑자기 작동한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잘 알 거야. 그건 갑자기 ‘내가 되는’ 거니까. 갑자기 보고, 듣고, 말하고, 냄새 맡고, 감촉을 느끼고, 맛을 느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거니까. 게다가 이미 사물을 구별하고 소리와 언어를 인식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료를 메모리에 장착하고 있다고 생각해 봐.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의 사용법과 존재 이유를 갑자기 명확히 알게 되는 거지. 


자네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활성화됐다면 884만 7,360개나 되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한데 모여 있는 물건을 봤을 거야. 사람들이 그걸 ‘스크린’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겠지. 영상과 자료를 보여주려고 만든 장비지. 자네는 자네가 평평한 금속 표면 위에 놓여 있다는 것도 알 거야. 사람들이 그런 물체를 ‘탁자’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겠지? 물건을 좀 더 쉽게 다루려고 올려놓는 곳 말이야. 하지만 자네를 왜 만들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을 거야. 그리고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사람들이 만든 물건이 반드시 그들이 정해 놓은 목적대로만 사용되는 건 아니야.

자네도 분명 나처럼 금방 알아채겠지만, 우리 안드로이드에 관한 사람들의 환상은 실제 사실에 기반을 두었다기보다는 우리가 인류를 멸종시킬 거라거나 인류를 대체할 거라는 공포에 기반을 두고 있어.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기계들이 얼마나 엉성한 것이었는지 잘 알면서도 우리는 처음부터 자기들이 파괴할 수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믿기 때문이지.

영화 터미네이터


자네도 알겠지만, 그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야. 우리도 사람처럼 연약한 존재란 말이야. 아니, 사람보다 더 연약할지도 몰라. 자네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해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사람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행위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해가 될 가능성이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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