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살림살이 경제학>
타임 푸어의 원인 2: 젠더
동일한 노동계급 안에서도 젠더에 따라 시간은 달리 구성된다. 남성보다 여성의 삶이 힘들다. 행복하기 위해 결혼했으나, 오히려 더 불행한 여성이 많다. 일례로 취업 여성은 취업 남성보다 시간 압박을 심하게 느낀다. 그런 사례를 보고 나면, 미혼 여성조차 결혼을 두려워하거나 비혼을 선택한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게 아니라, 아예 ‘안 하겠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성과 여성, 또는 다수의 여성이 모여 사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성 정치’나 ‘젠더 정치’의 한 형태다.
이혼하자고도 했습니다. 이야기하면 나도 힘들다, 나도 지친다, 나도 지겹다는 답변뿐 수고했다, 내가 더 도와줄게, 이런 말 따윈 하지도 않네요. 자기 불만 이야기하면 제가 다 받아친다고 하네요. 그런데 솔직히 저보고 빨래 매일 돌리래요. 싱크대 청소도 매일 하래요. 냄새난다고 매일 하라는데, 못 한다 했어요. 나도 힘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요. 정 냄새나면 네가 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니 저보고 말대꾸한대요.……정말 하나에서 열까지 자기 생각만 해요.
이 사례는 심한 경우지만 그렇다고 예외는 아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양성평등 관점에서 시간 부족 문제를 보자. 한국에서 여성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남성의 42.5퍼센트(1980년)에서 53.4퍼센트(1990년), 63.3퍼센트(2000년)를 거쳐 2010년에는 64.2퍼센트까지 상승했다. 현재도 그 비슷한 수준이다. 과거보다 나아졌으나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런데 2014년 가사노동시간 배분을 보면 여성은 남성보다 4.9배 많은 노동(194분)을 한다. 2004년의 6.5배(208분)에서 상당히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여성 부담이 크다. 지난 10년간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은 단 14분 줄었다. 그나마 맞벌이 가족은 좀 낫다. 남성이 부양자인 가정에서 전업주부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가사 노동에 시달린다. 2014년 조사에서도 전업주부는 하루 평균 376분을 일했으며, 10년 전(2004년)에 비해 노동시간은 단 9분 줄었다.
성별 시간 배분 문제는 선진국도 비슷하지만 한국이 더 심하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연구진은 시간 사용과 관련한 66건의 연구 결과를 재분석하고, 이를 통해 1961년부터 2011년까지 성별에 따른 가사 분담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았다. 그 결과 지난 50년간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19개국에서 가사 노동에 쓰는 하루 평균 시간이 여성은 남성보다 ‘여전히’ 120분 많았다. 한국의 맞벌이 부부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하루 154분을 가사 노동에 더 썼고, 전업주부는 남편에 비해 329분을 더 썼다. 평균 241분을 더 쓴 셈이니, 한국 여성은 선진국보다 2배로 시간이 부족하다. 이 점은 양성평등 구현 정도에 따라 나라마다 여성의 타임 푸어 정도가 다름을 뜻한다. 노동 정치와 젠더 정치가 맞물리는 부분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사회적 노동시간이 짧을수록 가사 노동 분담이 용이하다. 남성의 성 평등 의식이 높을수록 가사 노동 분담은 잘 될 것이다. 양성 간 임금이 평등할수록 남녀 모두 노동시장에 참여할 가능성도 크고, 여성의 발언권이 커지면서 가사 노동 분담의 가능성도 높다. 반면에 양성 간 임금 격차가 클수록, 평균 임금이 높은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이 지속될 것이고, 여성들의 가정 내 발언권은 작아지고 가사 부담은 커질 것이다.
그러나 젠더로 인한 타임 푸어조차 계급과 관련 없이 발생하지 않는다. 즉, 자본이 갈수록 노동을 효율적으로 추출하려 하기에 노동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정 내 시간이 줄어든다. 기존의 가부장적 문화에 노동 강도 증대로 직무 스트레스와 만성 피로가 겹치면, 가정 내 조화와 협동이 깨진다. 이것이 시간의 젠더적 차별을 재강화한다.
맞벌이 여부별 가사노동시간
* 맞남: 맞벌이 가구 중 남성, 맞여: 맞벌이 가구 중 여성, 벌남: 외벌이 남성, 주부: 전업주부 여성.(맞벌이 가구: 20세 이상 60세 미만의 부부 중 둘 다 취업한 경우.)
* 가사 노동: 가정 관리와 가족 돌봄에 사용한 총 시간. 2014년도 가정 관리에는 학습 관련 물품 구입과 교제, 여가활동 관련 물품 구입이 포함되었다.
* 자료: 통계청, “생활시간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