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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10. 2017

04. 호주 이민, 방향을 설정하다.

<나는 호주의 행복한 버스 드라이버>

한 달여를 해변에서 게를 잡으며 막막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그때, 우연치 않게 바로 옆집에 사는 데이비드(David)를 만났다. 데이비드는 이곳 경찰공무원이다. 인사를 나누고 집에 초대를 받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 pakutaso.com


그는 무엇보다 호주에 온 것을 환영하면서 좋은 이웃으로 지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호주에서는 무엇을 하며 살지 물었다. 잠시 나는 할 말을 잃고 어떻게 대답하여야 할지 망설였다. 그러나 순간, 나는 솔직해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데이비드, 솔직히 나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현재로서는 말입니다. 두렵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가 건강하니, 무엇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영어가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먼저 할까 생각중입니다.”

“영어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우선 기술을 배워보세요. 호주는 직업학교제도(Tertiary Education System)가 잘되어 있으니까요. 영어는 필요하면 나중에 더 배워도 됩니다. 아니, 영어는 일하며 늘 수 있느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요.”

데이비드의 말에 들으며 무엇인가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앞으로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데이비드는 당연한 일이 아니냐며 언제든 오라고 했다. 

안갯속 같던 내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후 직업전문학교의 모집 요강을 확인하기 위해 지역 신문과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국인 교포가 아닌 현지인의 조언을 최우선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는 매우 유효한 결정으로, 이후 내가 실질적이고 매우 효과적으로 호주사회 속으로 진입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이민을 계획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이민 초기에는 언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거의 모든 분들이 한국인들과 접촉하기를 원한다. 언어가 통하는 그들로부터 안정적인 기분과 정보를 취하기 위해서다. 당연히 나도 그 기분을 이해한다. 그러나 한국인들끼리의 만남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새로운 사회로의 진입을 늦출 뿐이다. 마음속의 두려움 또한 결코 떨쳐버릴 수 없다.

주변의 예를 들면, 거의 동시에 몇 가족이 애들레이드로 이민을 온 경우가 있었다. 어떤 이는 사업비자, 어떤 이는 기술이민, 그리고 유학비자 등등 각기 다른 비자로 입국한 이들은 각자의 집에서 돌아가며 파티를 하는 등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 별빛 아래 와인을 마시며 미래를 이야기한다는 게 낭만적인 느낌도 들었을 테고,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모습에 잠시 들뜨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1년이라는 세월을 그렇게 보낸 그들에게 남은 것은 여전히 가시지 않은 두려움뿐이었다. 함께 떠들어대던 계획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얻은 소위 ‘정보’라고 하는 것들은,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남들 이야기뿐이었다. 그들의 관계 또한 악화되어 나중에는 결국 서로를 비난하는 사이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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