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미세먼지와 아틱호의 운명 ♬

<아주, 기묘한 날씨>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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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에 관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통해 날씨에 담긴 자연의 메시지를 전하는 신간 도서 <아주, 기묘한 날씨>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리는 오수진입니다. 벌써 마지막 시간인데요, 지난 시간에 이어 산업혁명의 미세먼지 스모그가 만든 비극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악명 높은 런던의 ‘완두콩 수프’는 가정집에서 쓰는 석탄 난로와 공장에서 내뿜는 노란 연기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미국 선박왕 에드워드 나이트 콜린스(Edward Knight Collins)는 ‘그 어떤 배보다 튼튼한 배’를 만들었는데, 아틱호는 그 가운데서도 으뜸이었다. 타이태닉호보다 60년 앞서 등장한 아틱호의 화려함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배 내부를 모두 증기로 따뜻하게 데울 수 있고, 우아한 식당, 여성을 위한 사교룸, 남성을 위한 흡연실이 갖추어져 있고, 모든 시설은 대리석과 거울, 금박으로 장식했다.

1854년 9월 20일, 아틱호는 엄청난 속도로 항해해 아흐레 후엔 뉴욕에 도착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영국 리버풀을 떠나 뉴욕으로 향했다. 일주일 뒤인 9월 27일 수요일에 아틱호는 뉴펀들랜드섬 부근에 있는 케이프 레이스를 지나고 있었다. 마침 아틱호는 두툼한 안개에 휩싸였다. 시간은 정오였다. 곧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더블린에서 온 스물네 살의 식당 종업원 피터 매케이브는 한참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식탁에 물 잔을 놓으려고 2등 선실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배가 충돌했습니다.”

아틱호는 프랑스의 철제 스크루 추진선인 SS베스타(SS Vesta)호와 충돌했다. 자욱한 안개 때문에 두 배는 서로 보지 못했다. 프랜시스 도리언은 아틱호의 삼등항해사였다. “제일 먼저 들린 소리는 ‘우전타’라는 외침이었습니다. 그때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습니다. 갑판으로 나가니까 두 배가 고작 6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게 보였습니다. 아틱호의 키가 전혀 움직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배의 닻걸이가 나란한 방향을 향한 채로 충돌해 있었으니까요.”

제임스 스미스는 일등석 승객이었다. “침실에 있다가 밖으로 나왔어요. 루스 선장님이 사방으로 지시하고 계셨습니다. 항해사와 선원 모두 갑판 위를 마구 뛰어다니고 있었고요. 분명히 위급한 상황인 건 확실한데, 그 누구도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건지, 어떤 일을 집중해서 해야 하는 건지,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도리언이 말을 이었다. “모두 다 미쳐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아틱호에는 구명정이 여섯 척 있었는데, 승선한 사람의 절반을 태울 수 있는 규모였다. 하지만 한 척은 배의 피해를 살피려고 선원들이 타고 바다로 내렸는데, 그 배는 해수면에 닿자마자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여자와 아이들이 갑판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불안한 얼굴로 잔뜩 무언가를 묻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어떠한 위로나 희망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아버지와 딸이, 동생과 오빠가 서로 흐느껴 울면서 얼싸안았고, 함께 무릎을 꿇고 신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남은 구명정 다섯 첫 가운데 네 척에 거의 모든 기관사와 항해사들이 올라타고 아틱호를 빠져나간 뒤에, 사람들은 남아 있는 구명정에 오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 노력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문이나 배의 널빤지를 떼어내 조잡한 뗏목을 만들려고 했다.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며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었고, 여자에게 달려드는 사람도 있었다.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고, 바다로 떨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배가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나는…… 배의 모든 선실에 물이 차오르면서 내는 부글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죠. 아마도, 모두 가라앉기까지, 내 생각에는, 30초에서 1분 정도 걸린 것 같군요. 갑판에는 아직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조지 H. 번스(George H. Burns)는 애덤스익스프레스(Adams Express)라는 화물 운송 회사의 배달부였다. “아주 엄청난 굉음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소리가 귓가에 들립니다. 그 거대한 배를 바다가 삼켜버리던 장면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틱호 증기실에서 일한 화부의 형제였던 제임스 카네건은 이렇게 말했다. “배가 완전히 가라앉은 뒤에 우리가 타고 있던 구명정이 그 불행한 배가 가라앉은 곳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구명복을 입은 여자들 시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선원실 담당 승무원 토머스 스틴슨(Thomas Stinson)은 놀라운 증언을 했다. “입고 있는 옷 때문에 승무원장은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틱호에는 408명이 승선했지만, 생존자는 86명뿐이었다.




북 큐레이터 | 오수진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중문학 복수전공)를 졸업한 후, 현재 KBS에서 기상 캐스터로 근무하고 있다. 더굿북의 북 큐레이션을 담당하고 있으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봉사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환경부에서 홍보 대사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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