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자고 결혼했을까>
사례
40대 후반 남성이 아내의 손에 이끌리다시피 해서 상담을 받으러 왔다. 아내 Y 씨의 말에 따르면 남편 T 씨는 성미가 급해서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고 했다. 얼마 전에도 Y 씨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다가 그만 몸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T 씨는 회사원이다. 회사일은 그럭저럭 해내지만 원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으로, 화가 치밀면 난폭해진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어른의 발달장애’가 의심되어 부부가 여기저기 상담을 받으러 다녔지만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T 씨 말로는 결혼하고 나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과격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Y 씨는 결혼생활만이 문제가 아니라며 T 씨가 부모님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Y 씨가 유행성 감기를 심하게 앓았을 때 남편에게 필요한 물건을 메모해주면서 장을 봐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언뜻 보기에도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짜증을 냈다. 내동댕이치듯이 던진 장바구니에는 적어준 물건의 반도 들어 있지 않았다. 무심코 “이제까지 뭐했어?”라고 물어보자, 남편은 얼굴을 더욱 험상궂게 찡그리더니 메모해준 물건이 없어서 사지 못했다고 툴툴거렸다.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어서 전후 사정을 찬찬히 물어보자, 사야 할 물건 중 하나가 없어서 그 물건을 계속 찾았는데 도무지 찾을 수 없어서 결국 포기하고 그냥 왔다고 했다. Y 씨는 어이가 없었다. 그 물건을 빼고 나머지 물건을 사오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자 남편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며, 적힌 순서대로 사려다 보니 물건을 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 것쯤은 코흘리개 애들도 알 텐데”라고 Y 씨가 혼잣말을 하자 T 씨는 이성을 잃고 신음하듯 으르렁거리며 기껏 사온 물건들을 냉장고에서 꺼내 쓰레기통에 내던져버렸다. 이렇듯 T 씨는 한번 분노에 사로잡히면 분별력이 없어지고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한번은 가족들과 함께 드라이브를 갔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다. Y 씨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고 여러 번 말했지만 T 씨는 한사코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다. 결국 한참을 더 헤매기만 했다. “그래서 물어보자고 했잖아요”라고 Y 씨가 불평을 늘어놓은 바로 그 순간, 분노의 스위치가 켜졌다. T 씨는 “시끄러워!” 하고 고함치더니 곧장 차를 급발진시키고 엄청난 속도를 내며 반대차선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위험하니까 그만해!”라고 소리쳐도 듣지 않았다. 경적을 울리면서 트럭이 다가와 거의 부딪치기 직전에야 원래 차선으로 돌아온 덕에 간신히 충돌은 피했지만 살아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 사건을 겪은 이후, 혹시라도 심한 말을 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되도록 조심하려고 하지만, Y 씨도 그다지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니라 어느새 남편의 행동에 말참견을 해버리고 만다. 그러다 아차 하는 순간, 분노의 스위치가 켜지면 남편 T 씨는 큰소리를 지르고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등 돌출 행동을 한다.
남편 T 씨는 어렸을 때부터 신경질적이고 과민한 아이였다. 혼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남자아이와 놀기보다는 여자아이와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환경 변화에 민감해서 항상 모든 게 똑같지 않으면 싫어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친구가 없어서 늘 외톨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야 겨우 친구가 생겼다. 하지만 성적은 우수해서 공대에 진학했으며, 회사에 취직한 뒤에도 문제없이 업무를 잘 처리했다.
시어머니는 잔소리가 심하고 간섭이 심한 편이다. 어려서부터 T씨는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했다. 원래 어머니에게 많이 의존하는 편이었는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로 어머니와의 유착 관계가 한층 더 심해졌다.
이런 성격 때문에 여성과 교제한 적이 거의 없으며, 당연히 이성관계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배우자를 고르는 데도 어머니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시어머니가 하는 좋은 이야기만 듣고 T 씨와의 결혼을 결심한 Y 씨는 T 씨의 이런 점을 알게 된 뒤 사기를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T 씨를 처음 봤을 때는 용모가 단정하고 행동이 조심스러운 그를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전에 딱 한 번 더 만났는데 옆에 앉아 있던 T 씨의 어머니만 계속 이야기했다. 상대방이 서두른다는 말을 듣고도 결혼할 결심이 서지 않았는데, 반강제로 떠밀리다시피 결혼하게 되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듯, 시어머니는 결혼식 날짜부터 사는 곳까지 사사건건 참견했다. 처음엔 Y 씨도 참으려고 했지만 육아 문제로 이런저런 잔소리를 듣고 나자 감정적으로 대립하게 되어 지금은 거의 인연을 끊은 상태다.
평소 말수가 적은 T 씨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내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는 편이다. Y 씨는 수다스러운 편이라 혼자 쉼 없이 재잘거리는 경우가 많다. Y 씨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좀처럼 반응하지 않는 남편에게 불만이 많지만 성격상 입을 꾹 다물고 있지 못한다. Y 씨는 사소한 일도 적당히 넘기지 못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 심하게 상처받는 타입이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면 줄곧 그 일을 걱정하며 하루 종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이다. 단순하게 결론만 생각하는 T 씨에게 Y 씨의 말은 한없이 맴돌기만 하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느껴져서 듣고 있노라면 넌더리가 날 정도다.
Y 씨는 아이 때문에 이혼을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계속 쌓이는 스트레스 때문에 몸 상태가 나빠졌을 정도다. 적어도 갑자기 폭발하는 남편의 돌발 행동이 없어지기를 바라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을 받으러 온 것이다.
다음 회에서는 위 사례에 대한 처방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