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한국의 신흥 부자들>
노점상이 된 은행원에서 호텔경영자·건물주가 된 노점상 이야기
탈무드에서 사람에게 가장 상처를 입히는 것은 빈 지갑이라고 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릴 적부터 역사교육과 함께 철저히 경제교육을 시킨다. 세계 인구의 0.2%인 약 1,500만이 유대인이다. 그런데 월가의 영향력 있는 인물은 25명 중 10명이 유대인이다.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1979년 폴 볼커 이후 현재의 재닛 옐런까지 4대째 유대인이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도 유명하다. 더욱이 13세에 ‘바미츠바’라는 성인식으로 친지들이 아이에게 축의금을 모아서 준다. 그 돈은 종잣돈이 되어 스스로 투자함으로써 현장에서 배우고 깨닫는 금융, 경제교육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선함을 두어 어릴 적부터 습관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한 개인에게 종잣돈은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을 통하여 누군가는 큰 성과를 내고 누군가는 다 잃는다 해도 그 속에서 다시 잃지 않는 것을 배운다면 그 종잣돈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고 본다. 똑같은 종잣돈이어도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기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푼돈으로 남는다. 대부분 신흥 부자들에게 종잣돈은 규모와 상관없이 자신을 바꾸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성인식에서 받은 종잣돈으로 창업해서 성공한 것처럼 어디에 있던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흔히 사람들에게 종잣돈의 규모를 물어보면 천만원 정도라는 답변이 대다수이다. 그러나 신흥 부자들에게는 300만원부터 500만원도 종잣돈이 되었다. 그것이 마중물이 되었다. 돈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돈도 상대적이다. 그는 은행원이었다.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을 했다. 퇴직금이 있었지만 그걸로 시작하기에는 부담이 생겼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래서 없어져도 부담되지 않는 300만원으로 시험 삼아 장사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평생 은행원으로 고객만 상대했지 막상 할 게 없었다. 턱없이 부족한 돈으로는 자리조차 얻기 힘들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한 달째 아이디어만 구상하느라 지친 발걸음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항상 계시는 붕어빵 아저씨가 계셨다. 그는 붕어빵을 사면서 번쩍했다. ‘그래 이거면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을 상대했기에 부끄러움은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부터 매일 아저씨를 찾아갔다. 옆에서 손님에게 붕어빵을 같이 팔아드리면서 전수받았다. 그렇게 몇 달 하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어디서 시작할지가 고민이었다. 이미 나름 목 좋은 자리는 차지하고 계셨다. 그러다 문득 퇴사한 회사가 생각났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궁해도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용기를 내자 결심했다. 중고로 기계도 구입하고 재료를 사다가 집에서 연습도 하면서 실력을 키워갔다. 들어간 비용은 총 150만원 정도. 추운 겨울 손수레로 회사 앞까지 가는 거리는 걸어서 약 한 시간 반. 그렇다고 봉고차를 살 수도 없었다. 그래 걷기 운동도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자고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출근할 때처럼 양복을 입었다. 그리고 회사 앞에 도착했다. 막상 와보니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이것을 성공하지 못하면 앞으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부끄러움은 던져버리자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동료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는 그를 몰라보았다가 “붕어빵~”이라는 빌딩숲에서 들을 수 없는 생뚱맞은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를 본 동료들이 놀란다. 그는 애써 웃으며 “개업기념으로 오늘은 프리입니다. 공짜입니다!”라고 외쳤다. 어색해하며 동료들이 몰려들었다. 돈을 주려고 하는 것을 오늘은 프리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겨울 하늘이 유난히 맑은 그날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무엇이든지 처음 한 번이 중요하다고 했던가. 다음날, 또 다음날이 되자 출근하는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단골이 생겼다. 처음에는 동료들만 있었는데 인근 빌딩에서도 간식으로 예약 주문까지 들어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문량을 맞추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바쁜 간식시간대에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했다. 바로 그의 부인이 3시간 정도 나와 함께 도와주었다. 그는 철저하게 최저수급의 아르바이트수당도 지급했다. 처음에는 마음 아파하던 부인도 그의 밝은 모습과 열정적인 모습에 충실한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고 한다.
차츰 종류도 늘렸다. 아침에는 샌드위치와 뜨끈한 차도 팔았다. 군고구마, 알밤도 추가했다. 매상이 몇 배로 뛰었다. 간식 배달이 많이 들어왔다. 샌드위치나 김밥은 부인이 집에서 아이들과 만들어 공수했다. 여름에는 시원한 음료도 추가했다. 그렇게 2년 정도 되어갈 때 그 주변의 단골 분식집이 매물로 나왔다고 동료가 말해주었다.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이었지만 분식집 투자금 삼천만원은 되고도 이천만원이 남았다. 150만원이 마중물이 되어 종잣돈으로 변신한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제는 살아가면서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분식집도 나날이 잘되었다. 이미 붕어빵 시절부터의 단골손님들이었던 사람들이 새로운 고객을 연결해주기도 했다. 옆집을 트고 또 옆집에는 집밥 식당을 열었다. 그렇게 장사를 확장해 나갔다. 그 상권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신뢰가 높았다. 골목의 궂은일도 도맡아 했고 은행에서 근무했던 경험으로 주변 상인들의 금융상담도 틈나면 해주었다. 열악했던 상인들은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합법적인 절세와 금융상품 활용에 대하여서도 틈을 내서 무료로 강의하고 교육을 해주었다. 컨설팅도 마다하지 않고 해주었다. 그때 그는 잠을 하루에 3시간도 채 못 자는 날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은행에 다닐 때와는 다른 보람이 있어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자발적으로 도와주었다고 한다.
당연히 장사는 잘되었다. 작지만 알찬 수익이었다. 그렇게 7년 정도 되었을 때 그 지역에서 꽤 유명한 호텔이 급매물로 나왔다. 워낙 잘 아는 사이라 모자라는 돈은 분납하는 것으로 해서 건물을 구입했다. 은퇴한 은행원에서 노점상으로, 그리고 그 노점상이 사업가가 되는 순간이었다. 푼돈을 푼돈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자금 내에서 최선을 다해 장사했기에 가능했다.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지만 그는 7년이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불만과 어려움으로 가득 찬 시간이 아닌, 희망의 시간’이었다고 과거를 회상한다. 지금은 호텔도 매각하고 빌딩으로 임대업을 하고 있다. 그의 빌딩에 입주한 상인들은 10년 넘게 임대료를 올리지 않았다. 그도 어려운 시절을 겪어 보았기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상인들이 남 같지 않다고 한다. 말이 임대업이지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라 할 수 있다.
푼돈의 위력은 그 푼돈을 키워가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푼돈으로 머물기도 하고, 거대한 자금으로 탈바꿈하는 마중물이 되기도 한다. 돈 자체를 내가 어떤 마인드로 대하느냐에 따라 돈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는 돈을 모으기에 앞서 성취감을 쌓으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 이후에 돈을 모으는 것은 더 이상 참아야 하는 인내가 아니라 목표로 전환된다. 더 이상 수고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노력으로 생각되기에 더 쉽고 빨라진다. <푼돈재테크>(장순욱 저)에서도 “푼돈은 인내심을 길러주고, 그 인내심은 사회생활이나 일상생활에서 조급하게 서둘다 일이 잘못되는 경우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내적 에너지가 된다. 푼돈이 인내심을 키우는 이유는 시간이 개입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공감 가는 부분이다.
나는 푼돈 투자의 대가로 <나는 마트 대신 부동산에 간다> 김유라 저자라고 생각한다. 그녀도 거주하는 곳부터 시작했다. 그 이후에는 적은 돈으로 수익률이 높은 지방에 투자했다. 시골의 아파트는 투자대상이 아니라는 고정관념도 깨뜨렸다. 논밭 가운데 있는 아파트도 입지조건과 편의시설이 좋으면 저평가되었을 뿐이지 투자대비 수익률이 높다. 설사 가격이 오르지 않아도 수익률만 비교한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녀에게 소액은 푼돈이 아닌 충분한 가치의 마중물이자 종잣돈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신흥 부자들의 공통점은 밑바닥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푼돈도 소중히 다루고 그 푼돈을 불려 더불어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 투자 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다양한 방면으로 나누고 파생되는 가치는 더 이상 푼돈의 가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