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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24. 2017

05. 아스퍼거 남편과 카산드라 아내

<어쩌자고 결혼했을까>

처방

최근 아스퍼거 증후군과 자폐증 스펙트럼이라는 용어가 세상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어른의 발달장애라는 표현도 자주 듣는다. 발달장애에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지만, 근래에는 아스퍼거 증후군 같은 자폐증 스펙트럼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마찬가지로 급증하고 있다.

자폐증 스펙트럼은 자폐증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일련의 증후군으로, 첫째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힘들거나 사회성이 부족하고, 둘째 똑같은 행동이 반복되고 한정된 특정 영역에만 관심이 쏠리는 경향을 보이며, 셋째 과민한 감각 반응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스펙트럼이란 ‘연속체’라는 의미로, 경증부터 중증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표현이다.

T 씨의 경우 검사를 통해 아스퍼거 타입의 자폐증 스펙트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진단 결과가 나오자 T 씨 본인보다 아내인 Y 씨가 “역시 아스퍼거였군요” 하며 편안해진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괴롭히던 행동의 원인을 알자 모든 것을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특성이 원인임을 알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Y 씨는 각오를 다졌다. 전에는 남편의 성격과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뿐, 남편의 행동을 도통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웠다며 한층 가벼워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실제로 같이 생활하다 보면 남편의 반응이나 행동에 반감이 들게 마련이다. 화를 내는 것은 물론, 자신의 기분을 헤아려주지 않는 T 씨 때문에 Y 씨는 속상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해도 남편은 가만히 듣고 있거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거나, 말을 하더라도 “아, 그래” 하며 겨우 맞장구를 칠 뿐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감탄하거나 공감하는 말을 해줄 법도 한데, 정작 남편인 T 씨는 이런 말을 전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열심히 떠들어댄 것이 허탈하게 느껴질 정도다. 마음을 받아주기만 해도 정말 후련해질 것 같은데 언감생심 바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스퍼거 증후군인 사람의 배우자나 파트너는 우울증이나 스트레스성 질환이 생기기 쉬운데, 이를 ‘카산드라 증후군’(감정 박탈 증후군)이라 부른다. 정확히는 아스퍼거 증후군뿐만 아니라 공감 능력과 감정 인지에 문제가 있는 파트너와 함께 생활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날 위험이 있다. 파트너가 회피형 애착 유형이거나 자기애성 인격장애 같은 인격장애와 심한 뇌기능 장애를 앓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카산드라 증후군은 상대방이 공감해주면 쉽게 풀릴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아 스트레스성 문제나 우울증이 발생한다. 자존감 저하와 우울감, 의욕과 관심 저하, 불안, 분노, 공황 상태, 혼란 같은 정신적인 증상은 물론 편두통이나 피로감 등 신체적인 증상도 나타난다. 또한 여성은 월경 전 긴장 증후군이 악화되어 생리하기 열흘 전부터 초조함과 더불어 기분이 처지고 몸이 나른해지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파트너가 시도 때도 없이 계속 폭발하면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합병증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 파트너가 공감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아 정서적으로 무시 받는다는 느낌이 들거나 자신의 애착이 불안정해지기 쉽다. 그 결과, 카산드라 증후군의 특징인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바로 대인관계 문제다. 예전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 매사 소극적으로 행동하거나, 걸핏하면 사소한 일로 충돌하고, 가족을 학대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부부가 모두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면 관계가 더 심각하게 어긋나거나, 카산드라 증후군이 나타날 위험이 한층 더 높아진다.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우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최근 들어 자폐증 스펙트럼으로 진단받는 사람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기껏해야 몇 퍼센트 정도다. 하지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회피형 애착 유형이 30퍼센트 이상에 달한 것을 감안하면, 당신의 파트너도 그런 성향일 가능성이 결코 적지 않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친밀하고 서로를 믿어야 하는 파트너와 정서적인 유대감을 갖지 못하고 마음을 공유하지 못하는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고문으로 있는 상담센터에도 최근 들어 이런 내용의 상담이 급증하고 있다. 제대로 치료하면 대부분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개선되기 때문에 비관할 필요는 없다. 이 부부 역시 상담과 치료를 병행하면서 부부 관계가 개선되어 평온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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