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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24. 2017

06. 오드리 헵번의 첫 결혼

<어쩌자고 결혼했을까>

사례


영화 <로마의 휴일>과 <티파니에서 아침을>, <마이 페어 레이디>의 주인공으로 지금도 전 세계 팬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여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은 특유의 밝고 쾌활한 모습과 대조적으로 외로움과 애정 결핍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자랐다. 네덜란드 귀족 출신인 그녀의 어머니는 모성이 결여된 사람으로 딸에게 더없이 엄격했다. 어릴 때부터 사랑에 굶주린 오드리는 자신의 응석을 받아줄 상대를 찾아 헤맸다.


여섯 살 때 집을 나간 아버지는 그녀를 더욱 외롭게 했다. 나치를 편든 아버지는 정치 활동을 위해 어머니의 자산을 유용한 뒤 행방을 감춰버렸다. 얼마 뒤 오드리의 부모는 결국 이혼한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일은 그녀의 생애에 가장 깊은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이후 아버지와는 한두 번 정도 만났을 뿐, 얼굴을 마주치는 일조차 없었다.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아직 어렸던 오드리는 자신의 곁에는 더 이상 아버지라는 존재가 없다는 쓸쓸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후 그녀는 아버지가 없는 다른 많은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이상화된 환상 속의 아버지를 추구하게 된다. 아버지가 없는 쓸쓸함과 어머니에게 마음껏 어리광부리지 못하는 마음을 오드리는 먹는 것으로 달랬다. 전쟁 중이라 숱하게 굶을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해 그 후 과식과 극심한 다이어트를 되풀이하게 되는데, 그 최초의 징후는 이때 이미 나타났다.

얼마 뒤 오드리는 발레에서 장래 희망을 찾게 된다. 딸의 재능을 발견한 어머니도 열심히 발레를 배우게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녀가 살고 있던 네덜란드는 독일에 점령당해 재산을 전부 몰수당했다. 혹독하고 궁핍하게 생활하는 가운데도 발레 연습은 계속됐다. 마침내 전쟁이 끝났을 때, 오드리는 16세가 되었다. 살고 있던 거리는 폐허나 마찬가지였고 오드리 일가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어머니는 우는소리 한 번 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 딸을 일류 발레리나로 만들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가서 유명한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게 했다. 어머니는 가정부와 꽃집 점원으로 일하며 억척스레 딸을 보살폈다.

그렇게 한 보람이 있어, 오드리는 프로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더욱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런던의 유명한 발레 스쿨 ‘마리 램버트’ 오디션을 보러 갔다. 여봐란듯이 합격했지만 이번에도 돈이 문제였다. 모델과 쇼 댄서를 하면서 돈을 벌었지만 집세까지 낼 순 없었다. 결국 교실 한구석에서 기거하는 것을 허락받아 겨우 입학했다.

열심히 연습하는 오드리에게 존경하는 스승 마리 램버트(Marie Rambert)는 어느 날 “세컨드는 될 수 있어도 프리마돈나는 될 수 없다”고 말했다. 168센티미터인 오드리는 프리마돈나가 되기에 키가 너무 컸다. 스승의 말은 발레에 모든 것을 건 오드리에게 충격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였다.

오드리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거기에서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다. 출연 작품 중 하나가 감독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의 눈에 띄어 <로마의 휴일> 주인공 역 후보로 스크린 테스트를 받게 된 것이다. 오드리는 감독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로마의 휴일>은 개봉하자마자 세계적으로 히트를 쳐서 오드리는 일약 대스타가 됐다.

인기가 한창일 때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키웠다. 상대는 멜 페러(Mel Ferrer)라는 12살 연상의 배우였다. 멜은 세 번의 이혼 경력이 있고, 전처와 함께 사는 네 명의 자식이 있었다. 

오드리는 이미 세계적인 스타였지만 어딘가 자신감이 없고 내성적이며 순종하는 면이 있었다. 의지할 곳 없던 어린 시절의 경험과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자란 것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한 일은 단호하게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머니는 멜과의 교제를 반대했지만 어머니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듯, 오드리는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켰다. 오드리는 25세 때 스위스의 루체른에서 멜과 결혼했다. 

오드리는 멜에게 순종하며 그를 섬겼다. 자신에 비하면 한참 명성이 떨어지는 배우인데도 항상 남편 멜을 앞면에 내세우려 했다.

오드리는 일을 줄여서라도 가정을 우선시하고 싶었는데, 남편 멜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오드리가 돈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멜은 아내를 교묘히 이용해 좀 더 돈을 벌고자 했다. 그런 남편의 의도에 오드리는 고분고분 따랐다. 절실히 원하던 아이를 어렵사리 임신했는데, 지나치게 무리한 탓에 두 번이나 유산했다.

애완견을 키우면서 쓸쓸한 마음을 달랬으나 그녀는 아이를 무척이나 원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가 태어난 것은 당시로서는 좀 늦은 나이인 31세 때였다. 결혼한 지 6년이 된 해였다. 태어난 아들을 션(Sean)이라고 이름 지었다. 션은 ‘신의 은총’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아들의 탄생과 더불어 오드리에게 또 한 번 인생의 고비가 찾아왔다. 오래전에 생이별한 아버지와 25년 만에 재회한 것이다. 아버지는 아일랜드에서 오드리 나이 정도 되는 여성과 재혼해서 살고 있었다. 딸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존재와 과거의 정치 활동이 딸의 명성에 흠집을 내지 않을까 걱정되어 아버지라 밝히고 나서지 못한 것이다. 오드리는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그동안의 사정을 알게 된다. 오드리는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생활비를 지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드리는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두 가지 커다란 소망이 이루어지면서 오드리는 행복의 절정이라 할 만한 시기를 보낸다. 이 시기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셔레이드>, <마이 페어 레이디> 같은 히트작을 만나 여배우로서 더욱 크게 활약했다. 하지만 남편 멜과는 조금씩 의견대립이 생기며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일과 금전적인 문제를 둘러싸고 두 사람의 생각 차이는 점점 확연하게 벌어졌다. 오드리는 금전적인 손실보다는 일의 내용을 중요시했다. 하지만 남편 멜은 손실에 집착했다.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오드리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소녀 같아서 중요한 판단을 전부 멜에게 의존했을 때는 의견대립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오드리가 남편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할 정도로 성장하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남편의 강요에 따라 남편이 감독하는 영화에서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 역을 맡아 연기하기도 했는데, 이런 영화에서는 모두 혹평을 받았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남편에 대한 신뢰는 예전만큼 절대적이지 않게 됐다.

더욱 결정적인 일은 지방시 향수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오드리의 친한 친구인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가 그녀에게 바치는 향수를 만들었는데, 그 향수가 마음에 든 오드리는 “나만 쓰게 해줘”라고 농담 삼아 말했다. 그래서 그 향수는 오드리만 사용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금지된다는 뜻에서 ‘금지’라는 프랑스어인 ‘랑 테르디’란 이름이 붙은 채 판매가 시작됐다. 이 같은 에피소드가 알려지면서 향수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멜이 트집을 잡은 것이다. 아내의 인기를 이용해 큰돈을 벌었다며 멜은 지방시를 거칠게 비난했다. 이후 지방시는 약간의 사례금을 지불했다. 오드리는 얼마 안 되는 돈 때문에 친한 친구에게 무례하게 행동한 남편에게 완전히 실망해버렸다.

부부 사이를 더욱 냉각시킨 것은 멜의 여자 문제였다. 멜은 여성편력이 화려한 남자였다. 매력이 넘치는 오드리였지만 그를 자신에게만 붙잡아둘 순 없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과거가 있는 오드리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이혼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을 모르는 체하며 어떻게든 부부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1년의 별거 생활을 거쳐 두 사람이 이혼한 것은 오드리가 39세 때였다. 14년 남짓한 결혼 생활 중 절반은 둘의 결혼이 실패였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소비됐다. 그동안 남보다 곱절은 애정에 목말라했으나 남편은 그녀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다. 오드리는 아들을 버팀목 삼아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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