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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24. 2017

09. 홍콩, 인연 맞는 곳

<여행의 취향>

운이 겹치는 곳이다. 상하이와 대만에 이어 여행했던 중화권 여행지, 홍콩에서 좋은 운을 연이어 경험했다. 그저 그런 곳이 있다. 여행 준비를 꼼꼼하게 잘한 것도 아니고 기대를 많이 한 곳도 아닌데, 연이 잘 맞고 뭐든 잘 풀리는 그런 곳이 있다. 사람에게만 인연이 있는 게 아니다. 장소에도 사물에도 인연이란 게 있는데, 홍콩은 나와 보통이상의 인연이었다.

서울에서 가까워 갈 기회도 많았는데, 오래도록 큰 관심이 없어 다른 곳을 두루 가보고 뒤늦게야 가게 된 곳이 홍콩이었다. 뒤늦게 가진 중화권에 대한 관심이 그곳으로 이끌었던 거다. 홍콩에 관심이 생긴 후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여행 준비를 거의 안 했다. 여행 책자 몇 장 팔랑팔랑 넘겨보지도 않을 정도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마음과 머리를 비운 만큼 크고 넓게 볼 수 있을 거라는 배짱도 있긴 했다.


그럼에도 다행스럽게도 처음부터 술술 잘 풀려가는 여행이었다. 도미토리 숙박을 좋아해서 일부러 9인실을 예약했는데, 예약한 방은 조용했고, 인도, 중국, 대만, 미국, 대구 등 여러 나라의 여러 지역에서 온 룸메이트들과도 잘 맞았다. 입이 좀 짧은 편이라 잦은 여행에도 새로운 음식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편인데, 잘 모르고 대충 찍어 주문하는 요리마다 내 입맛에 딱 맞춘 듯 맛이 좋았다. 심각한 길치에 방향치인데, 복잡하기로 유명한 홍콩에서 길을 꽤 잘 찾았을 때는, 이곳과 궁합이 제대로 맞는구나 싶었다.


여행운은 홍콩에서 그치지 않고 마카오까지 이어졌다. 3박 4일의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홍콩 본섬에서만 머무르기에는 아쉬워 마카오 하루여행을 하기로 했다. 온종일 바삐 다니다 보니, 동행한 친구가 꼭 가고 싶다던 콜로안 빌리지(Coloane Village)에 밤이 늦어서야 도착했다. 그곳에서 유명한 로드 스토우즈 베이커리(Lord Stow’ Bakery)의 에그타르트를 맛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세나도 광장(Senado Square)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가는 동안 날이 저물어버렸다. 카페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 아쉬워하며 버스에서 내렸는데, 버스정류장 바로 맞은편에 로드 스토우즈가 있었고,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 우리에게 직원은 싱긋 웃으며 “라스트 오더(Last Order)!” 라고 외쳤다. 하, 기가 막히는 타이밍!


마카오 하루여행을 좀 서둘렀어야 했나, 일정을 조율했어야 했나 싶게, 마카오에서의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갔다. 본섬으로 가는 배를 한밤중이 다 돼서야 탔다. 본섬에 가서 피크트램(Peak Tram)을 타고 홍콩의 야경을 볼 계획이었는데, 너무 늦은 것 같았다. 마침 블로그 친구가 선물해 준 피크트램 티켓이 있어 꼭 타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간당간당했다. 뛰다시피 트램 정류장에 들어서며 운행 시간을 묻자 “라스트 피크트램(Last Peak Tram)!”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막차인 피크트램에 승차하자마자 트램 기사가 씩 웃으며 손가락을 두 개 펴 보인다. 텅텅 빈 트램 안에 승객은 우리 둘뿐이었다. 라스트 피크트램! 트램을 전세 낸 듯 우리끼리만 즐기다니! 어둠을 가르며 가파르게 올라간 트램을 타고 전망대에 도착했다. 원래 전망대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인데, 그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홍콩의 밤만이 우리와 함께했다.


홍콩에서의 운은 계속 이어졌다. 많은 여행객들이 홍콩에서 맛보고 사가는 쿠키를 살 때였다. 홍콩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 쿠키를 사기 위해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 넘게 줄을 선다고 했다. 아침부터 줄 서는 사람들이 골목 모퉁이를 돌아 길게 이어진다는 그 상점을 가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홍콩대학교(University of Hong Kong, 香港大學)에 갔다가 우연히 들러본 거였다. 흰색 매장으로 들어가 쿠키를 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분. 거짓말처럼 쉽고 빠르게 쿠키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놀랍고 우스울 정도로 크고 작은 운이 이어졌으니, 홍콩과 마카오는 나와 연이 닿고 궁합이 잘 맞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이에만 인연이 있는 게 아니다. 사람과 장소에도 인연이 있는 거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잘 맞고, 쉽게 가까워지며 그 연을 오래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우연처럼, 기대 없이 나와 잘 맞는 연을 타국, 생경한 곳에서 만나고 느낀다는 건 즐거운 경험이다.

나의 감정과 취향, 느낌을 힘들이지 않고 나눌 수 있는 공간과 사람을 만나는 여정이 결국 여행의 목적이고, 여행의 의미인지도 모른다. 홍콩과 마카오는 나와 인연이 있는 공간,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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