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자고 결혼했을까>
오드리가 두 번째 결혼생활을 끝내려고 마음먹은 것은 사실 새로운 반려자가 될 남자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오드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여성이었다. 새로운 반려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리 형편없는 반려자일지라도 헤어질 결심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 오드리의 새로운 파트너로 등장한 사람은 로버트 월더스(Robert Wolders)다. 배우이자 프로듀서로 오드리보다 7살 연하인 그는 25살이나 연상인 아내를 잃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오드리를 만났다. 나이 차이가 한참 나는 연상의 여인을 한결같이 사랑해온 것만으로도 알 수 있듯, 로버트는 여자에게 헌신하는 데 삶의 보람을 느끼는 남자였다. 로버트는 자신의 아이를 갖거나 아버지가 되는 데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한 여자만 순수하게 사랑했다. 계속 사랑을 갈구하던 오드리는 마침내 자신을 성모처럼 우러르고 사랑하며 자신만을 생각해주는 존재를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지만 이들에게는 공통분모가 많았다. 우선 두 사람 모두 네덜란드 출신으로, 네덜란드어로 대화할 수 있었다. 또한 독일에 의해 고국이 점령되고 파괴된 고난의 시대를 함께 겪었다. 로버트는 KLM네덜란드 항공사 임원의 아들로 태어나 로테르담에서 유년기를 보냈는데, 전쟁을 피해 피난 간 농가가 우연히도 오드리가 살던 아른헴에서 엎드리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었다.
전쟁 후 로버트는 새로운 세상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왔다. 뉴욕의 연극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나서 출연한 TV 드라마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 여세를 몰아 영화에도 출연해 일약 스타가 될 줄 알았는데, 영화는 모두 흥행하지 못했다. 세 번째 영화에서 그를 상대역으로 발탁한 사람이 그 유명한 여배우 멀 오베론 (Merle Oberon)이었다.
오베론은 <폭풍의 언덕>에서 주인공인 캐서린 역(상대역은 로렌스 올리비에)을 맡은 미모의 명배우로, 화려한 연애 편력으로도 유명하다. 그 오베론도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로버트는 그녀를 보자마자 마음이 끌려 사랑에 빠졌다. 과거에 상처를 입은 여자가 한참 나이가 어린 남자와 사랑에 빠져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영화의 내용대로 두 사람은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5년 후 결혼했다. 오베론에게는 네 번째 결혼이었다.
이후, 로버트는 아내의 숭배자로서 그녀에게 헌신했다. 하지만 결혼한 지 4년 만에 오베론이 세상을 떠났다. 세간에는 로버트가 재산을 목적으로 결혼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그는 아내의 유품인 보석이 경매에 부쳐져 750만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로 낙찰되었는데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그가 상속받은 것은 아내와 함께 돈을 내고 산 바닷가 근처의 별장뿐이었다.
오드리와 로버트는 로버트의 친구 집에서 처음 만났다. 오베론이 죽은 지 두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로버트가 식사 초대를 받아 친구집에 갔는데 그곳에 오드리가 머물고 있었다. 오드리는 상심해 있던 로버트를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다. 겉치레가 아닌 진심이 담긴 위로에 로버트는 구원받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 시점에는 연애감정이 없었다. 처음에는 오드리가 로버트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위로해주는 일이 많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드리도 그에게 의논하고 위로받거나 의지하는 일이 많아졌다. 어느덧 로버트는 오드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두 번의 결혼 실패로 상처받은 마음과 아직 10살도 되지 않은 둘째 아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이 남자를 신뢰해도 괜찮을지, 또 똑같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로버트의 성실하고 한결같은 헌신을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그가 지금까지 만나온 남자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로버트는 언제나 그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주었다. 그녀를 우선하고 헌신했으며, 결코 그녀를 지배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드리는 비로소 자신보다 그녀의 마음을 먼저 생각해주는 남자를 만났다고 믿었다.
그 무렵 오드리의 어머니는 많이 노쇠해졌다. 오드리에게 어머니는 큰 산 같은 존재였다. 어머니는 오드리를 계속 손아귀에 붙잡고 좌지우지하는 존재였지만 동시에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했다. 오드리는 후일 “어머니는 나의 마음이고 의식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날로 쇠약해지는 어머니를 보며 오드리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막막해했다. 한 번도 어머니에게 사랑받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어머니의 생각을 따르든 거역하든 그녀는 어머니에게 깊이 얽매여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로버트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덕분이었다. 처음에 로버트는 아이들을 생각해 오드리의 집근처에서 따로 살았지만, 결국 아이들이 그를 받아들여서 함께 살게 되었다. 로버트는 오드리에게 남편 버금가는 파트너였다. 그들은 강한 유대로 맺어졌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드리는 로버트가 사실상 자신의 남편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어디를 가든 함께했다.
이후 오드리는 배우 일보다 소외된 아이들을 돕는 유니세프 활동에 정열을 쏟았다. 장남인 션의 말에 따르면 그런 오드리의 변화에도 로버트의 존재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로서 오드리는 에티오피아, 터키,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수단, 방글라데시, 베트남, 소말리아 등을 적극적으로 방문해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듬어주고 세계를 향해 지원을 호소했다. 마더 테레사도 그녀의 헌신적인 활동에 칭찬과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소말리아에서 돌아온 오드리는 복통을 호소해서 로스앤젤레스의 병원에 긴급 입원했다. 원인은 당초 염려한 대로 아메바 감염증이 아니라 대장암이었다. 사흘 후 수술했지만 암은 이미 위에도 전이된 상태였다. 그나마 화학요법이 약간 희망이 있었지만, 오드리는 그것을 거부하고 오래 살아 정든 스위스 집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오드리는 생애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보내며 정원에 나와 산책을 즐기기도 했다.
한 달 후, 오드리는 아들들과 로버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누군가를 원망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히려 주변 사람에게 농담을 건네거나 위로하려고 했다. 그녀를 잃을 거라는 사실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쩔쩔매는 아들들과 로버트에게 오드리는 용기를 북돋아주기까지 했다. 눈을 감기 일주일 전, 오드리는 부모님을 잇달아 여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너는 아주 운이 좋아. 나도 너처럼 부모님을 실컷 사랑하고 싶었어.”
집에서 임종을 맞이한 덕분에 로버트와 그녀는 죽는 날까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조용한 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두 사람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둘째 아들에게 한 말이었다. “미안해, 이제 곧 갈게.”
다음 회에서는 오드리 헵번 사례에 대한 처방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