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마트 씽킹>
“애는 똑똑한데 너무 이기적이야.”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나 각종 올림피아드에서 늘 1~2위를 다툰다. 하지만 배려와 존중의 가치처럼 아이들의 더불어 사는 능력을 평가해보면 대부분 하위권에 머문다. 행복지수는 낮고, 학생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2011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으로 ‘일진’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인성’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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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학생들의 학력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 오히려 1등에 가깝다. 덩달아 사교육 수준 역시 세계 최고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똑똑한 인재들이 많고, 이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높은 교육열과 교육 수준이 지금의 한국을 성장시켰고, 많은 나라들이 이를 부러워한다.
한국전쟁 후 지난 60여 년을 돌아보면 우리가 걸어온 길은 참으로 대단하다. 폐허를 딛고 경제를 일으켜 세웠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아시아 중심 국가로 자리 잡았다. 세계 10위 안팎의 경제력, 한류(韓流)의 힘 등 세계 무대에서 한국인은 스마트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은 그만큼 자랑스럽지 못하다. 공동체 안의 갈등과 반목, 낮은 법치 수준, 나만 잘되면 그만이란 개인주의가 만연하다.
그동안 우리는 물질적 풍요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가치를 말이다. 개개인은 똑똑하지만 그로 인한 성공이 모두의 성공으로 공유되지 못하고,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똑똑한 것, 스마트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보자.
‘스마트(smart)’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지적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똑똑하고 영리하다는 것은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등의 가치 판단이 부재한 개념이다. 즉, 철학적 방향성이 내포되지 않은 몰가치적인 단어다. 무엇을 위한, 어떤 똑똑함이냐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똑똑함은 성공의 원천이었다.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이 있듯이 수십 년 전 부모들은 논 팔고 소 팔아 자식들을 공부시켰고, 이를 통해 자식이 사회적 성공을 거머쥘 수 있도록 뒷바라지했다. 모두가 못살았던 시절, 똑똑함은 개인에게 삶을 윤택하게 바꿔줄 희망사다리였고, 사회적으로는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스마트에 대한 한국인의 열정은 교육으로 이어졌고, 이는 지난 60여 년간 한국을 지배해온 철학이었다.
그러나 어떤 똑똑함이냐, 무엇을 위한 똑똑함이냐에 대한 고민 없이 탁월한 지적능력만을 강조한 것이 문제였다. 스마트는 어떤 목적을 향한 도구가 될 수는 있어도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방향성이 내포되지 않은 스마트는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 몰인성 등과 결합하며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다. 엘리트층이 저지르는 사회 범죄는 서민층의 범죄보다 사회적 파장과 폐해가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으로써, 공공선을 키우는 방향으로써의 스마트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것은 ‘인간성(humanity)’을 갖춘 스마트 사회, 즉 ‘휴마트(Humart)’ 사회다. 올바른 방향으로 스마트를 이끄는 것이 바로 ‘휴마트’이다. 방향성과 가치(그릿)가 없을 때 스마트는 이기주의로 흐른다. 그동안의 스마트는 개인의 욕망을 채울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공공의 이익과 공공선에는 합치되지 않았다. 반면, 휴마트는 나눔과 배려 등 휴머니티에 기반한 뚜렷한 목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