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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ug 23. 2017

03. 부동산시장은 왜 기울어진 운동장인가?

<다가오는 3년, 대한민국 부동산 시나리오>

내가 부동산을 처음 접한 때는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법인영업부(대부계)로 발령받아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다. 그 후 대부계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거의 안 다뤄 본 물건이 없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투자사례를 직접 다뤘다. 지수 함수적으로 급변하는 세상에서 과거의 경험이 뭐 대수냐 하는 말을 하지만 변하지 않는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부동산은 투기세력에 의해 주도되고 시장은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여유자금이 준비된 사람이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해 그들 대부분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여유자금 없이 레버리지에 기대어 투자한 경우는 대부분 시장의 변동성을 극복하지 못해 투자원금을 날리고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이다. 투자는 그것이 무엇이든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게임이다. 시장의 변동성에 흔들리지 않는 방법은 투자지식이 아니라 여유자금과 비례해서 결정된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경제는 성장했으나 돈의 결핍은 더욱 심해져 간다. 이 시대에 돈의 결핍을 더 많이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유·무형의 자산을 올인하는 투기로는 돈을 벌 수도 부자가 될 수도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시드머니(Seed Money, 종자돈)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심지어는 로또 한 방으로 인생이 역전되는 일은 흔한 사례가 아니다. 또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되면 당신의 인생이 뭐가 달라지겠는가.  

마하트마 간디가 말했다. 노동하지 않고 얻은 불로소득은 인간 세상의 7대 죄악 중 하나라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투자를 통해 얻은 불로소득이 훈장거리는 될망정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이러니 아이들마저 장래희망을 물으면, 빌딩주인이 되서 월세 받으며 편히 사는 것이라는 대답을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한다. 이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우리가 그렇게 만든 세상이다. 꼬마빌딩 열풍은 지금도 식지 않고 더해만 간다. 준비과정 없이 누구나 건물주가 될 수 없다. 이루지 못할 꿈을 꾸는 것은 개인에게 고문을 가하는 행위다. 

임금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세상에서 과연 죽도록 경제공부만 해서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세상에서는 학습능력이 탁월한 사람만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래 맞는 말이라고 치자. 그러나 자신도 가난한 서민의 삶을 살아왔다는 사람들이 시장의 질서를 왜곡시키는 갭투자로 집을 수십 채 소유했다고 하면서, 당신도 나처럼 죽도록 공부하고 소망하면 부자가 된다고 강권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인가. 한국 자본주의가 왜 이렇게 일그러지고 찌그러들었는지 지금쯤은 알만도 하건만, 사람들의 생각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내 재테크시장은 개인의 경험이 필터링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에 대량 방출되어 사회 흐름과 유리되는 것이 항상 문제다. 

대한민국의 부동산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 시장에서는 시장의 주인인 서민 중산층은 소외되고 시장의 감시자가 되어야 하는 정부의 정책은 항상 다주택보유자, 건설회사 등 우리사회 기득권층의 이익에만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 왔다. 정의롭지 않다. 이런 시장구조에서 부동산 상승론, 하락론 심지어 붕괴론을 말하는 것은 다 부질 없는 논쟁이다. 


시장을 예측하는 일은 어렵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경제흐름이 변하는 세상에서 후행지표에 불과한, 글을 쓰는 시점부터 과거의 통계가 되어버리는 투자시장에서 이것이 강력한 예측의 도구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의 관점을 객관화시키려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이는 결국 개인 신념의 해우소로 끝이 나기 마련이다.
투자시장에서 소위 애널리스트라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행태는, 어디서 주워온지도 모르는(만인이 정보를 생산하고 이를 SNS로 유통시키는 환경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거르는 일도 쉽지가 않다) 통계자료를 가지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정보를 왜곡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주식시장에서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또 어떤가. 과학적 근거라도 되는 것처럼 일단은 선과 선으로 이뤄지는 각종 차트를 가지고 자신의 관점을 관철시키려고 한다. 이는 훗날 제기될 수 있는 책임을 벗어나는 도구로 곧잘 활용된다(자신의 예측이 틀렸어도 자신은 차트를 과학적으로 풀어 얘기했을 뿐이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국내에서 나오는 주식 관련 리포트의 90% 이상은 친기업적인 시각에서 배출된다. 바로 다음날 주가가 폭락하는 장에서도 이들은 이런 대담한 리포트를 내놓는다. 그들은 투자자가 손해 보는 일에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은 무한 긍정주의로 투자자를 시장에 끌어들여 자신들의 주머니만 채우면 된다. 그들의 리포트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거래세, 수수료는 그들의 주 수입원이다. 시장에서 생산되고 유포되는 상당수의 정보는 힘없는 개인투자자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미 시장은 거대자본, 이들에 기생해 생계를 유지하는 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언론도 그들의 최대 돈줄이 되는 건설사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그들의 이익에 유리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이러니 시장의 흐름과 언론의 기사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간극이 존재한다.

부동산시장에서 정부는 매우 강력한 세력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정책은 시장의 흐름을 바꿔 놓기도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정부의 정책을 넘어서서 ‘왜 우리의 부동산정책은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항상 친시장적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정책이 만들어지는 정치의 구조를 알아봐야겠다.

민주공화국체제에서의 의회주의 정치란 무엇인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의회주의가 처음 시작된 영국 의회의 초기 정당 휘그당(whig party)과 토리당(tory party)은 현대에 와서 보수당과 노동당으로 진화해 왔다. 영국에서 보수당과 노동당을 가르는 기준은 지극히 물적 토대 위에 기초한다. 단편적으로 내 집을 갖고 있는가(Householder) 아니면 내 집을 갖고 있지 않은가(Non householder)에 따라서 정당의 지지층이 확 갈린다. 다시 말해 영국의 정당은 그의 지지층이 속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의도 국회는 서민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속해 있는 정당은 다르지만 이들 대부분은 기득권층이다. 이러니 여의도 국회에서 서민을 위한 각종 개혁입법들이 좌절된다. 

부동산시장의 정책이라는 것이 매번 가진 자, 건설자본의 이익에 충실하게 전개되어 왔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 부동산 불패신화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부동산은 어쨌든 인플레이션을 능가하는 이익을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진보정부(사실 이 말은 어패가 있다. 적어도 경제 측면에서 새 정부 역시 시장친화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적어도 경제적 측면에서는 진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가 들어섰으니 부동산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강력한 부동산 규제정책이 실행될 것이라고 예상을 한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정책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부동산 급등의 원인이 되었던 전 정부의 부동산 규제완화정책을 원상 복귀하는 수준이다. 근본적으로 투기수요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2주택 이상의 다주택자에게 보유세 누진할증제롤 적용하고 주택임대사업자에게 이익에 대한 적정한 과세정책을 편다면 투기세력에 의해 부동산시장이 왜곡되는 현상은 크게 사라질 것이다. 

과연 현 정부가 그런 의지를 갖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의문이 간다. 우리나라의 부동산정책을 좌우하는 관료집단은 국가의 시장 개입을 정당화한다. 과거 진보정권들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어설픈 시장방임과 국가사회주의가 결합해 부동산 버블을 팽창시켜 서민들의 고통만 가중되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정치의 민주화보다 더 어려운 것이 경제의 민주화다.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까 부동산은 정치적 이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가치가 아니라는 말이다. 부동산을 움직이는 것은 시장이고 정부는 이 시장에서 반칙하는 자들을 징계하는 법적제도를 만들어 시장에서 반칙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면 된다. 그런데 시장의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반칙을 일삼는다면? 부정하고 싶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부동산을 이데올로기(정치, 개인의 신념)로 분석하는 것은 시장의 흐름을 과소평가하게 만들고 투자자들을 시장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에 의존하게 만들어 투자의 방향을 왜곡시킨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부동산 상승론과 붕괴론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버블이 시장의 상황보다 지나치게 과대평가되면 어느 순간 버블이 발생하고 버블이 지나치면 시장이 감당하지 못해 붕괴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10년 전 월가의 메가뱅크들은 금력을 동원한 막강한 로비력으로 강력했던 반독점 금융규제법을 무력화시키고 저신용자에게 주택담보가치 이상의 대출을 해주었다. 이렇게 확보한 저당권을 특수목적회사(SPC)라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주택저당권을 증권화시켜 시장에 유통시킴으로써 부실을 증폭시켰고, 이 과정에서 버블이 붕괴되고 우량자산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이것이 부동산 붕괴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부동산 버블, 붕괴론 모두 그 배경에는 인간의 탐욕이 있었고 이것이 지나쳤을 때 동전의 양면이 뒤집히는 것처럼 버블과 붕괴가 교차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제도를 움켜진 세력이 그 전리품을 독점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그들에게 유리한 경제지형을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 대한 로비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얻는 전리품은 로비로 들어간 비용보다 수백 배, 수천 배 이익으로 돌아온다. 경제가 정의로워지려면 제도가 공정해야 한다. 앞으로 그런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방관하면 절대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부동산투자로 돈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보다 부동산의 가치 상승을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부동산 한 번 잘 사고파는 것으로 개인의 부가 결정되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없다. 부동산투자로 부자가 되는 것은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정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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