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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ug 24. 2017

02. "그건 혐오야" 조목조목 알려 주기

<그건 혐오예요>

2015년 11월 서울시 교육청과 정부 기관은 제기동의 한 중학교 건물 안에 발달장애인 직업훈련센터를 개관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를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시위가 잇달았다. 주민들은 남녀공학인 중학교에 ‘성인’ 발달장애인이 드나들 수 있어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성폭력 등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성인 발달장애인은 모두 잠재적 성범죄자라는 논리다. 나는 적이 놀랐다. 주민들은 발달장애인을 대놓고 범죄자 취급하고 있었다.


결사반대를 외치는 성난 주민들 앞에 장애인 부모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무릎을 꿇는 모습이 뉴스에 나왔다. 설립을 제발 허락해 달라는 호소였다. 하지만 주민들은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를 향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과 폭언을 쏟아 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참담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자식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제 자식을 위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내 새끼가 소중하면 남의 새끼도 소중한 거다. 내 가족이 제일이면 남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라고 해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비장애인 부모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 부모가 다른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하다니. 가슴이 미어졌다. 비극이었다.

한쪽에 자신들의 발언이 장애인 혐오라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 장애인 혐오는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는 사람들,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른 쪽에는 장애인을 혐오하는 반인권적 작태를 마치 혐오가 아닌 양 보도하는 언론이 있었다. 전자가 지금 한국 사회의 인권 감수성이 얼마나 극심하게 퇴행하고 있는가를 드러냈다면, 후자는 혐오 논리를 재생산, 확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 바닥까지 내려왔을까. 내면에 빨간 불이 켜졌다. 문득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만든 이길보라 감독이 생각났다. 그녀라면 이 사건을 보고 뭐라고 했을까.

결국 발달장애인 학교를 동네에 세우는 걸 반대한다는 건 내 주변에 장애인이 나타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요? 주위에서 장애인과 이웃으로 매일 그들을 마주하고 인사하는 사이였다면 과연 그랬을까요?

사실 우리가 롤모델이라고 생각하는 북미나 유럽 같은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를 여행 가면 한국인들은 곧잘 충격을 받는다고 해요. 가는 데마다 왜 이렇게 장애인이 많은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버스 탈 때 휠체어 타고 오르는 장애인도 많고 손써 가면서 수어로 이야기하는 청각장애인에 시각장애인도 많고. 그런데 사실 한국도 다르지 않아요. 같은 비율로 장애인이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장애인들은 다들 시설에 있거나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해요. 이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거죠. 내 옆에 장애인이 있는가 없는가. 내 옆에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즉 노출 빈도 같은 이유가 커요. 문제의 시작은 우리가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데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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