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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30. 2016

09. 1억 달러짜리 달걀을 부화시키다.

직원에게 BMW 5시리즈를 선물하다

                                                                                                                           

2009년 11월 6일, 오하이오 크로거 본사에서 찰스 우드와 미팅을 하기 전날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지난밤 꿈이 기억에 선명하다. 한창 농장에서 일하다가 무거운 허리를 폈는데, 저쪽 멀리서 남자 셋이 사냥을 하면서 내려온다. ‘남의 농장에 허락도 없이 뭔 일일까?’ 궁금해하며 재미 좀 봤냐 물었더니,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며 어깨를 으쓱인다. 그런데 그들 뒤로 사슬에 목이 감긴 여우 한 마리가 따라 내려온다. 사냥하던 남자들을 쫓아 내려온 것이 분명한 여우는 겁을 잔뜩 먹은 표정이다. 
     
그들은 여우를 나에게 맡기더니 가던 길로 내려가 버렸다. 앙칼져 보이는 여우를 조심스럽게 아우르자, 언제 얻었는지 모를 상처가 아물면서 생긴 흉터로 인해 약간 일그러진 얼굴을 한다. 그러면서도 얌전히 앞다리를 꼬며 내 품에 들어왔다. 야생 짐승이 이렇게 스스럼없이 품에 안기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부드럽게 안아주다가 잠에서 깼다.
     
찰스와의 미팅 결과는 기대 반 걱정 반의 우려를 남기고 끝났다. 찰스는 2,500여 개의 매장을 소유한 크로거 회사의 델리 코너 담당자다. 그는 미국 전체 매장에 입점해 있는, 18개 회사가 운영하는 800여 개의 도시락 판매장을 네 개의 회사를 선별하여 직접 관리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각각의 회사 중에 어떤 회사를 네 개의 회사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놓고 회사의 규모와 형태를 알아보고자 우리를 만나자고 한 것이었다.
     
우리가 18개 회사 중에 4개의 회사 안에 선정된다면 미국 시장의 25%를 먹을 수도 있다. 반대로 만약 탈락한다면 우리 회사 매출의 70%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 남부는 물론이고 미국 전역 어느 경쟁업체와 비교해도 우리가 다른 회사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변수가 매우 많은 사업 특성상, 찰스가 어떤 압력이나 왜곡된 정보를 100% 배제한 경우가 아니라면, 마냥 안심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 위기는 기회다.’ 미팅에서 돌아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전날 꾸었던 꿈을 기억해냈다.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회사가 한 번 더 도약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 ‘붉은 여우 생포작전’이라 이름을 지었다. 꿈에서 그들이 내게 맡긴 여우를 그들의 도시락 사업이라고 해몽했기 때문이다.
     
먼저 책상에 앉아 인터넷에서 사진을 검색했다. 네 명의 남자가 작은 나무상자를 앞에 두고 금방이라도 채를 휘두를 듯한 자세로 서 있는 사진을 구하고 나서 적당한 여우 사진도 찾았다. 두 사진을 가지고 코렐드로(Corel Draw)를 이용해서 그런대로 근사하게, 마치 영화 포스터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붉은 여우 생포작전’이라는 제목을 넣고 2010년 신시내티 필름 페스티벌 최우수 작품상이라는 단어 앞뒤로 월계수 잎까지 그려 넣었다. 하단에는 감독 김승호를 시작으로 직원들 이름 앞에 촬영이니 각본, 연출, 주연 등등을 임의로 적어놓으니 영락없는 영화 포스터다. 
  

포스터를 인쇄해서 사무실 문마다 붙였다. 그러고 나서, 내가 어떤 일을 반드시 성공시키고 싶을 때마다 해왔던 일을 시작했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 딱 네 번을 해서 모두 멋지게 성공했기에 이번 다섯 번째 역시 근사하게 성공하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하루에 100번씩, 100일 동안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내 목표는 명확하고 구체적이었다. 미국 전역에 300개의 매장과 일주일 매출이 100만 달러로, 연간 5,000만 달러를 달성하는 것으로 정했다. 그리고 해당 회사의 매장 가운데 이미 운영 중인 프리미엄 매장 50여 개에 대해서도 내가 운영하겠다는 목표로 넣었다. 우리는 이제 겨우 그런 매장을 하나만 손에 넣은 상태였지만 안 될 것이 무엇인가?
     
2월 22일, 세 가지 목표를 되뇐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정확히는 시작한 날로부터 102일째다. 이틀을 빼먹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96일째 되던 날에는 내가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할 때 찾아갔다가 푸대접을 받았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같은 날에 애틀랜타 지역의 한 회사를 지난 3년간 두드렸지만, 미팅 자리조차 마련해주지 않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마침내 104일째 되던 날에는 크로거 본사에서 부회장으로부터 직접 연락이 왔다.
     
제프 버트(Jeff Burt) 부회장이 우리에게 연락하게 된 과정은 이렇다. 어느 날, 크로거의 딜런(Dillon) 회장이 16개 지역 사장과 본사 주요 임원을 대동하고 휴스턴의 한 매장에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곳엔 우리 매장이 있었다. 직원들과 나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우선 인터넷에서 크로거 임원들의 이름과 사진을 구하고 우리 회사를 소개하는 팸플릿을 만든 후 매장 앞에 시식 대를 만들어놓고 나서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회장과 사장단들이 도착하자 우리 직원들은 전화로 인상착의를 대조해가며 한 명씩 막무가내로 회사 소개와 함께 팸플릿을 돌렸다. 지역 사장 중에는 우리의 제품이 월등한 것을 알아보고 상당히 깊은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3년간 애를 먹이던 회사의 대표인 애틀랜타 사장 루커스였다. 하지만 본사의 델리 부회장인 버트가 막상 보이지 않았다. 버트를 잡는다면 300개 매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회사를 소개할 때마다 그 일은 버트 담당이라며 한 걸음 물러서는 임원들을 포기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부탁했다.
     
딜런 회장에게도 기념품 회사를 협박하다시피 해서 하루 만에 만든 감사패를 전달했다. 감사패에는 우리 전 직원과 각 매장 점주들이 자기 나라말로 크로거에서 함께 일하게 된 것에 감사드린다는 말을 새겨 넣었다. 감사패를 받은 딜런 회장은 자기가 직접 들고 가겠다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버트 부회장이 연락을 해왔다는 직원의 전화를 받고 있을 때 나는 농장에서 온돌 찜질방을 만드는 중이었다. “그래? 찜질방은 마저 만들어야 하니 두 주 후로 약속을 잡아줘….” 3월 15일, 미팅하러 신시내티로 날아갔다. 목표를 세운 지 121일째 되던 날이다. 미팅 날 아침에 함께 참석한 우리 회사의 부사장이 아침에 꾸었다는 꿈 이야기를 한다.
     
달걀 한 판을 받았는데, 그 안에는 상한 것도 있고 싱싱한 것도 있기에 골라내는 꿈을 꾸었다며 내게 좋은 꿈을 꾸었는지 묻는다. 나는 대답 대신 농장에서 가져온 파란 달걀을 가방에서 꺼내 보였다. “이게 무슨 달걀입니까?” 동석한 우리 직원이 놀라며 묻는다. “이따가 알게 될 거야!”
   
버트 부회장과의 미팅은 신시내티 시내 언덕에 있는 조용한 일식집에서 순조롭게 진행됐다. 우리는 크로거 내의 도시락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과 개선에 대해 합의하고 그 일을 우리가 주도해서 맡기로 했다. 우리는 미팅 전에 이미 몇 차례의 모의 협상을 통해 버트 부회장이 필요로 하는 문제를 추적해왔고 철저하게 그들의 관점에서 답안을 준비했기에, 버트 부회장의 모든 의문과 목표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었다. 합의가 거의 마무리되자 나는 양복저고리에서 조심스럽게 파란 달걀을 꺼냈다. 

“이것은 어제 아침에 내 농장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며칠간은 신선합니다. 그러나 이대로 놔두면 썩을 수도 있고 인큐베이터에 넣으면 병아리로 키울 수도 있습니다. 도시락 사업은 이제 막 태어난 달걀 같습니다. 지금은 잘되고 있는 듯하지만, 지금 관리를 안 한다면 썩어버릴 수도 있고, 또는 거대한 사업으로 키울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 사업을 거대하게 키우고 싶다면 이 달걀에 서명합시다. 내가 이 달걀을 다시 휴스턴으로 가져가서 부화기에 넣겠습니다. 그리고 병아리가 태어나면 그놈을 크로거라 부를 겁니다.”
   
부회장을 시작으로 함께 자리한 담당자 찰스와 찰스의 상사인 앤도 기꺼이 그 달걀에 서명했다. 우리는 당장 다음 달부터 버지니아 주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의 그랩앤고(Grap and Go) 도시락 시장을 바꾸기로 했다. 일이 진행되기 시작하면 지난 5년간 이룬 회사의 성과가 매년 더해질 것이 분명하고, 빠르면 연말 안에도 300개의 매장과 주당 1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게 될 것이다.
     
“당신들이 휴스턴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임원들이 휴스턴을 다녀온 다음 날 내 책상에 당신들 명함이 놓여 있더이다. 내가 전화를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이더군요.” 버트 부회장은 미팅이 끝나갈 무렵 웃으며 덧붙였다. “찰스에게 물어보니 16개 회사 중에서 당신네 회사가 가장 좋은 느낌이었다고 하더군요.”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데 넉 달도 안 걸렸다. 휴스턴으로 돌아와 달걀을 부화기에 넣기 전에 사진을 찍어 영화 포스터를 한 장 더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달걀 밑에 아래와 같이 써서 붙였다.    


Another 100 Million dollars Blue Egg.


     
전 직원에게 BMW 5시리즈를 선물하다.
     
나는 회사 목표를 수정했다. 연 매출 1억 달러. 우리 회사를 방문하는 외부 사람들은 사무실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볼 때마다 여기서 영화도 만드느냐며 한마디씩 묻는다. 우리는 ‘붉은 여우 생포작전’ 포스터 위에 덧붙여 놓은 ‘Mission Complete’란 글씨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2007년에 나는 주간 매출이 48만 769달러(연 매출 기준 2,500만 달러)에 달하면 직원 모두에게 BMW를 사주겠다고 약속했었다. 2011년 3월 19일 자로 주간 매출이 48만 4,431달러에 달했다. 나는 즉시 BMW 딜러에게 차 다섯 대를 주문했다. 다섯 대의 차는 초기부터 함께해온 직원들이 하나씩 받아갔다. 매년 25% 정도의 매출 신장이 이어지던 예년에 비해 2010년은 40% 이상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고, 이듬해에는 무려 100% 이상의 매출 신장을 기대하게 되었다.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1억 달러짜리 달걀이 부화하여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웨스트버지니아, 유타, 애리조나 등등으로 번져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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