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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04. 2017

04. 비폭력운동과 여성들의 활약

<우리는 가해자입니다>

3·1운동은 비폭력 운동이었습니다. 당초 이 움직임을 알아차린 총독부는 당황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군대를 출동시켜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발포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처참함이 극에 달한 사건으로 제암리사건이 있습니다. 경기도 수원 지방에서 일어난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파견된 일본군은 독립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을 “훈시하겠다”면서 교회에 모아놓고 건물에 불을 지른 뒤 일제히 사격을 퍼부어 몰살시켰습니다. 이 일로 29명이 희생되었습니다.

3·1운동에서는 여성들이 눈부시게 활약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인 유관순은 ‘조선의 잔다르크’로 불립니다. 

그녀는 이화학당(지금의 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하던 16세의 소녀였지만, 학교가 휴교되자 고향인 천안으로 돌아가 장터에서 벌어진 독립 행진의 선두에 섰습니다. 헌병의 발포로 양친은 사망했고, 그녀도 주모자로 체포되어 징역형에 처해졌습니다. 하지만 “일본인에게 우리를 재판할 권리는 없다”면서 법정과 옥중에서의 투쟁을 멈추지 않다가, 거듭된 고문으로 인해 서대문형무소에서 18세의 나이로 숨졌습니다.

유관순 등 수많은 사람들이 옥사한 서울 서대문형무소. 현재는 한국 근대사를 전하는 역사관이 되었다.


탑골공원에는 각지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의 군상이 10개의 부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3·1운동 이후의 투쟁은 조선 국경에 접한 간도에서의 독립운동과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등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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