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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08. 2017

02. 루이 15세는 어디에 있는 걸까?

<손바닥 위 미술관>

우의적인 루이 15세의 초상

샤를 아메데 필립 반 루(Charles Amédée Philippe van Loo, 1719-1795) 作, <우의적인 루이 15세의 초상(Allegorical portrait of King Louis XV)>, 1762년, 캔버스에 유채, 67cm×56cm, 베르사유 궁 박물관 소장, 베르사유.

그림으로 다시 돌아와서, 그렇다면 이 한 무리의 남녀는 대체 누구이며, 이 중 루이 15세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림 오른쪽 아래에 있는 여인부터 살펴보자. 오렌지색 옷을 입은 이 여인의 손을 주목해보면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실마리가 있다.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검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정의의 여신 디케(로마 신화에서는 유스티치아)다. 그녀의 저울은 공정하고 명확한 판단을 상징하고, 칼은 엄정한 판정에 따라 질서를 수호하고 범법자를 강력히 처벌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상징한다. 일반적으로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린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눈가리개를 벗고 편안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 정의의 여신은 사자 머리에 팔을 걸치고 기대어 앉아 있다. 동물의 왕인 사자는 보통 강력한 힘 혹은 왕권을 상징한다. 정의의 여신이 사자에 기대어 앉은 이 조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혹시 감이 잡히는가? 엄격하고 공정한 정의 구현을 위해서는 강력한 힘(왕권)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탄탄한 기초 체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사자의 머리 위에는 특이하게도 가면이 하나 얹혀 있다. 범법자의 죄를 속속들이 파헤쳐 그 속에 숨어 있는 민낯을 드러내게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사자는 막대기를 묶어 만든 나뭇더미 위에 발을 얹고 있는데, 이 나뭇더미 묶음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옛날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옛날에 어느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나뭇가지 하나는 쉽게 부러뜨릴 수 있지만, 여러 개는 한꺼번에 부러뜨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결속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이야기인데,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고대 로마에서도 흔히 회자되었고, 로마인들은 그 교훈인 단결을 공동체의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한 다발로 묶인 막대기와 도끼는 로마 시민들의 결속력과 국가 공권력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쓰였다. 라틴어로 파스케스(fasces)라고 부르는 이것은 고대 로마 시대에 사용되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서구 역사 속에서 많은 나라들이 강력한 공권력을 상징하기 위해 사용해왔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같은 상징성을 지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결속된 힘의 상징인 파스케스는 전체주의를 뜻하는 ‘파시즘(fascism)’의 어원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이 끝나고 로마로 돌아오는 병사들이 파스케스의 도끼날을 빼는 관행이 있었다. 시민의 권리가 국가 공권력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존중하는 의미를 담은 퍼포먼스였다고 한다. 단결된 힘은 그것을 사용하는 주체의 선악에 따라 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할 수도 있지만, 파시즘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권력은 마치 양날의 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파스케스로 추정되는 나무 묶음 옆에는 과일과 곡식이 가득 담긴 항아리 같은 것이 보인다. 그런데 이 항아리가 엎어져 내용물이 쏟아진 모습이다. 사실 이것은 평범한 항아리가 아니라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풍요의 뿔 코르누코피아(Cornucopia)다. 이것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루이 15세의 통치 하에 프랑스가 번영을 누리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코르누코피아를 그림에 넣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 이제 시선을 위로 올려 정의의 여신 왼쪽 위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을 보자. 그녀는 머리에 황금관을 썼고, 왼손에는 부러진 화살과 왕의 홀을 겹쳐 쥐고 있다. 부러진 화살은 일반적으로 용서를 의미한다. 이 여인의 정체는 아마도 자비와 관용의 여신인 듯하다.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왕홀과 부러진 화살을 한 손에 같이 들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루이 15세가 통치자로서 매우 관대한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녀 뒤편에는 투구를 쓰고 푸른 망토를 걸친 군인이 서 있는데, 계급이 꽤 높아 보인다. 그는 깃발과 여러 개의 창을 팔로 안고 있고, 그 뒤로는 어렴풋이 화약총을 쥔 병사가 보인다. 이 두 사람은 신은 아닌 듯하고 루이 15세의 군사적 능력, 혹은 전쟁의 업적을 상징하기 위해 그려 넣은 것 같다.


                                        

자, 그럼 시선을 조금만 더 왼쪽으로 옮겨보자. 어깨를 감싼 사자 머리 가죽과 다른 쪽 어깨 위에 걸쳐 메고 있는 나무 몽둥이, 손에 황금 사과를 들고 있는 근육질의 몸매. 이 남자는 그리스 신화의 유명한 영웅 헤라클레스가 분명하다. 나무 몽둥이는 헤라클레스의 상징물인 올리브나무 몽둥이로 보인다. 몽둥이와 사자 가죽, 황금 사과는 그가 모험을 거치며 하나씩 획득한 유명한 전리품들이다.

                    
                                        

여기서 잠깐 헤라클레스에 대해 살펴보자. 헤라클레스는 아주 어린 아기 때부터 영웅담을 남겼는데, 그중 열두 가지 과업에 대한 무용담이 특히 유명하다. 그가 에우리스테스 왕의 명령으로 수행한 첫 번째 과업은 불사의 존재인 네메아의 사자를 죽이는 것이었다. ‘불사’의 사자를 죽이라니 참 억지스러운 미션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결국 미션을 완수해낸다. 그 과정에서 네메아의 사자를 잡기 위해 저 올리브나무 몽둥이를 손수 깎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헤라클레스는 네메아의 사자를 죽이고 얻은 가죽을 항상 갑옷처럼 몸에 걸치고 다녔다. 황금 사과는 헤라클레스의 열한 번째 과업에서 등장하는데, 헤스페리데스의 과수원에서 황금 사과를 훔쳐 오라는 미션이었다. 이 황금 사과가 열리는 나무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제우스와 헤라의 결혼을 축하하는 뜻에서 보낸 결혼 선물이었다. 헤라 여신은 100개의 머리를 가진 용에게 이 나무를 지키도록 했는데, 헤라 클레스가 그 용을 물리치고 결국 황금 사과를 따온다.


헤라클레스의 옆에는 흰 타조 깃으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푸른 망토를 걸친 여인이 앉아 있다. 그녀는 전쟁의 여신이자 지혜의 여신이며 예술가들의 수호신인 미네르바(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테나)다. 그녀의 다리 옆에는 메두사의 두상이 조각된 방패가 있는데, 그리스・로마 미술에서 미네르바 여신은 종종 이 방패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방패의 이름은 아이기스(Aegis)로, 원래는 주피터(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것이었으며 굉장한 위력을 지닌 무기로 알려져 있다. 미네르바의 왼손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나무 가지가 들려 있고, 오른손에는 긴 창이 들려 있는데 뱀 한 마리가 창의 자루 끝부분을 휘감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이 여신의 대표적인 상징물은 올빼미, 뱀, 올리브나무, 창, 아이기스다. 그러니 올빼미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이 그림에 나와 있는 셈이다. 이 작품에서는 미네르바가 손에 평화의 올리브나무 가지를 든 모습이 강조되어 있는데, 이는 루이 15세가 전쟁을 하되 전리품과 영토 확장에 연연하기보다 프랑스를 유럽의 중재자 역할로 만들고자 했던 자세를 칭송하는 의미로 추측해볼 수 있다.

                    
                                        

미네르바의 옆에 붙어 앉아 아이기스 위로 팔을 걸친 여인은 진주와 황금색 천으로 장식된 모자를 쓰고 있는데, 관대함을 주관하는 자비의 여신인 듯하다. 그녀의 앞에 놓인 조각상과 하프, 책, 붓과 팔레트, 왼손에 들려 있는 프랑스 왕실의 훈장, 그리고 예술가들의 수호신인 미네르바의 방패 위로 몸을 기댄 자세를 종합적으로 추론해보면, 루이 15세가 예술가들에게 특별히 관대한 대우를 해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화가의 정치적 기대감을 그림에 담아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음 회에 이어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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