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Sep 06. 2017

05. 혁명가들의 바지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19세기 초반까지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가 지배적이었다. 그렇다면 긴 바지는 어떻게 해서 20세기 들어 다시 서구에서 유행하기 시작했을까? 1789년 프랑스혁명의 주동자들이야말로 가장 먼저 긴 바지를 입기 시작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화려한 줄무늬가 들어가고 발목까지 오는 바지를 입었던 이들은 ‘상퀼로트 (sans-culottes: 반바지를 입지 않는 사람들)’로 불렸다.


놀랍게도 줄무늬는 역사를 통틀어 부정적인 함의를 띠었다. 구약성서 <레위기>의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레위기> 19장 19절)”라는 구절 때문인지 중세에는 줄무늬가 금기시되었다. 결과적으로 줄무늬 옷은 나병 환자, 사생아, 사형 집행인 등 소외계층만이 입었다. 20세기에 들어서까지 서구 각국이 재소자에게 줄무늬 죄수복을 입혔던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또한 독일어로 ‘처벌하다’를 뜻하는 ‘strafen’은 ‘줄무늬를 넣다’는 의미의 ‘streifen’과 놀랄 만큼 비슷하다. 그러나 줄무늬는 서서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하인 계층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계몽주의 시대에는 급진적 자유주의의 상징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했으며, 독립을 쟁취한 미국의 국기에 당당하게 들어감으로써 그 지위가 절정에 달했다.


1790년대만 해도 헐렁한 긴 바지는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가는 상놈들이나 입는 옷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이 바지에서 줄무늬를 없애고 웰링턴 공작이 자랑스레 긴 바지를 입고 다니자 긴 바지는 순식간에 반바지를 밀어냈고, 

웰링턴 공작

1820년대에는 계층과 상관없이 모든 남성이 입는 옷으로 정착했다. 그 이후로 긴 바지는 표준적인 남성복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은 언제부터 바지를 입기 시작했을까? 현대사에서 여성 최초의 본격적인 바지 입기 캠페인은 1851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아멜리아 블루머(Amelia Bloomer)는 퀘이커 교도이며 금주 운동가이자 여성 참정권론자였다. 블루머는 여성에게 강요된 옷이 여성의 신체와 정신을 구속한다고 보았다. 이에 대항하여 그녀는 커다란 터키식 바지를 입자고 제안했고, 그 바지는 그녀의 이름을 따서 블루머로 불렀다. 

그러나 블루머의 제안에 도덕주의자들은 분노의 절규를 쏟아냈다. 그것만 보더라도 그 당시 여성관이 어땠는지 짐작이 간다. <펀치(Punch)> 잡지는 “아내가 블루머를 입지 말도록 지금 당장 금지하지 않는다면 그 남자는 드레스를 입어야 할 것이다”라면서, 그대로 놔뒀다가는 말 그대로 여성들이 관계 중에도 바지를 입는 사회가 도래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기를 쓰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에 실제로 여성이 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였다. 그때도 블루머는 일상복이 아니라 운동복이었다. 군인이 말을 탈 때 바지로 갈아입었듯 19세기 후반 자전거가 등장하고 여성 친화적인 스포츠가 점점 인기를 얻으면서 여성은 자전거를 타거나 운동을 할 때 거추장스러운 치마를 벗어던지고 ‘이치에 맞는 옷’을 택했다. 

블루머와 판탈롱을 입으면 펄럭거리는 페티코트에 걸려 나무로 곤두박질칠 위험 없이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더욱이 자전거는 여성이 다른 여성 보호자 없이 혼자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바지가 여성 해방에 끼친 영향은 상당했다.

야회복으로 적당한 여성용 바지를 처음으로 만든 디자이너는 프랑스적인 우아함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진 코코 샤넬(Coco Chanel)이다. 1920년대 여성이 샤넬의 통 넓은 선원 바지(sailor pants)를 앞다퉈 입으면서 여성복 디자인에 남성복의 전통을 과감하게 가미하는 시대가 열렸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여성이 공장 교대 근무에서 벗어나 남성이 하던 역할을 이제 막 떠맡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때부터 상류층 여성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일부러 중성적인 의상을 입고 외출했다.

그러나 런던 근교 햄프턴 왕궁에서 열린 사교 파티의 패션과 랭카셔 볼튼의 번화가 상황이 같을 리는 없었다. 코코 샤넬의 영향력이 근로자 계층의 관습을 뚫고 들어가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중반 이후로 위건(Wigan) 탄광의 갱도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치마밑에 바지를 입고 작업한 일은 있었지만 시내 중심가를 다니는 일반 여성이 바지를 입고도 기분 나쁜 시선을 받지 않게 된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실제로 프랑스 파리에는 자전거나 말을 탈 때를 제외하고는 여성의 바지 착용을 금지하는 법규가 (사실상 사문화되기는 했지만) 2011년까지도 폐지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01. 왕이 빠진 왕의 초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