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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06. 2017

01. 왕이 빠진 왕의 초상화?

<손바닥 위 미술관>

우의적인 루이 15세의 초상

권력자를 위해 왜곡된 그림들을 보다 보면 ‘아부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부에도 어느 정도 실력과 자격이 필요하달까. 자크 루이 다비드처럼 소위 ‘금손’을 갖고 태어난 능력자가 권력자의 눈에 들 기회를 만나야만 인생역전이 가능한 법이다. 즉 실력과 타이밍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자고로 세상은 넓고 능력자는 많은 법이다. 그중에는 뛰어난 손재주와 적절한 처세로 당대에는 왕의 신뢰를 얻고 이름을 날린 예술가들도 많았겠지만, 모두가 자크 루이 다비드처럼 후세에 이름을 널리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장에서 살펴볼 작품을 그린 화가 역시 생전에는 승승장구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져간 예술가 중 한 명이다. 비록 오늘날의 대중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지만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참신한 화법을 시도한 화가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이번 작품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초상화이고, 주인공은 프랑스의 왕 루이 15세다. 루이 15세는 1715년 왕위에 올라 177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의 60년에 이르는 긴 재위 기간을 자랑하는 왕이다. 그런데 그의 증조부이자 선왕이었던 태양왕 루이 14세는 루이 15세보다 더 오랫동안(무려 70년 이상) 왕좌를 차지하고 있었다. 루이 15세가 왕위에 오르자 프랑스 국민들은 아주 오래간만에 새로운 왕을 맞아 기뻤던 모양이다. 기록에 따르면 루이 15세는 즉위 초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국민들 사이에서는 ‘친애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참고로 루이 15세의 손자이자 그 다음 왕인 루이 16세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남편이다. 프랑스 대혁명 때 처형된 바로 그 비운의 왕이다. 왕정복고로 즉위한 루이 18세와 샤를 10세도 루이 15세의 손자들이다.


지금부터 살펴볼 <우의적인 루이 15세의 초상>은 루이 15세 때의 초상화가 샤를 아메데 필립 반 루가 1762년에 그린 작품이다. 당시 52세였던 루이 15세는 이 작품을 보고 어찌나 좋아했는지 여태까지 본 자신의 초상화 중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공공연히 말했다고 한다.

샤를 아메데 필립 반 루(Charles Amédée Philippe van Loo, 1719-1795) 作, <우의적인 루이 15세의 초상(Allegorical portrait of King Louis XV)>, 1762년, 캔버스에 유채, 67cm×56cm, 베르사유 궁 박물관 소장, 베르사유.

                    
                                                            

그림은 한눈에 보기에도 ‘우아함’이나 ‘고품격’ 같은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상류층 취향에 맞춰져 있다. 서양 미술작품에서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은 대부분 실존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럼 설마 귀신인가? 루이 15세의 서거를 준비한 작품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 수 있겠지만, 루이 15세는 1774년 천연두로 사망하기 전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이 작품이 그려진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12년 전이다.


그림의 제목을 다시 한 번 보자. <우의적인 루이 15세의 초상>에서 우의(寓意)란 어떤 대상을 통해 비유적인 의미를 전달하거나 풍자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경우도 우의를 잘 활용한 작품이었다.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년) 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iberty Leading the People)>, 1831년, 캔버스에 유채, 260cm×325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파리.


들라크루아는 추상적 개념인 ‘자유’ 혹은 ‘자유에의 의지’가 혁명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 이해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인물의 형상을 갖춘 마리안느의 모습으로 의인화했다. 한마디로 ‘자유의 우의화’라고 할 수 있다. 자유의 여신은 그림 속 혁명군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림을 감상하는 우리 눈에만 보이는 존재다.


다음 회에 이어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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