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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08. 2017

08. 위안소는 일본군이 건설·관리

<우리는 가해자입니다>

오키나와에는 미군이 오키나와전투 직후에 접수한 방대한 구 일본군 문서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구 일본군에 의한 위안소의 건설·관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한 자료도 있습니다. 전후에도 오키나와에서 생활한 한반도 출신 배봉기(裵奉奇, 1991년 타계)와 같은 증인이 있었습니다. 일본군 위안소와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오키나와에서 추적해보았습니다.


진중일지의 내용

구 일본군 문서 자료 가운데 위안소 건설에서 위안부의 관리·통제까지 세세하게 기술되어 있는 것이 진중일지입니다. 진중일지는 중대 이상의 부대에서는 의무적이었습니다. 하루하루의 병영 생활, 주둔지의 주민 상황 등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일지를 보면 경우에 따라 ‘후방 시설’, ‘군인 구락부’, ‘야마토(大和) 회관’ 등으로 표기되기도 했던 위안소 관련 내용이 등장합니다.

『오키나와현사(沖縄県史)』와 각 시정촌사(市町村史)도 진중일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이를테면 요미탄촌(読谷村)의 『요미탄촌사·전시 기록』(상)에서 ‘여성들의 전쟁 체험’ 장을 보면 ‘위안소와 위안부’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군인 구락부’의 사용 요금, 영업 시간까지 정해놓은 구 일본군 문서.


“성병 예방이라든가 사기 진작이 목적이라고 했지만, 실제는 군이 관리한 전문적인 매춘 시설이었다.”

요미탄촌 내 위안소 설치와 관련된 사료로서 주둔했던 중대의 진중일지가 있습니다. 군인 구락부 설치를 위해 민가를 개조하라는 지시와 내부 개축 설계도도 있습니다.

『요미탄촌사』 편찬 담당자였던 고바시가와 기요히로(小橋川清弘)는 “지역 주민의 증언을 근거로 현장을 돌아다녀 보니 이곳저곳에서 위안소와 위안부에 관한 증언이 나오더군요. 일본군이 관여한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술회했습니다.


유린된 인권

오키나와에서 있었던 위안소와 위안부의 현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요?

요시카와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강제로 위안부가 되었던 여성들은 원통한 나날 속에 심신의 깊은 고뇌로 신음하는, 그야말로 혹독한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요?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과거의 과오를 정면으로 직시해야 합니다. 전쟁을 체험해본 적 없는 정치가들은 히로시마·나가사키와 오키나와를 통해 그 어리석음을 깨우쳐야 해요.”

앞서 언급한 요미탄촌의 고바시가와는 “연행에 강제성이 있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위안부가 되어 성 노예 노릇을 강요당했다는 사실은 엄연히 존재하니까요. 전쟁 당시 여성들의 인권이 유린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논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미야자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핵심은 성 노예로서 어떻게 여성들의 인권이 철저히 무시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위안소와 위안부 문제는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사료가 진중일지에 명확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검증을 진행하며 다음 세대에게 진실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4년 10월 25일 자, 아베 가츠지(阿部活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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