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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08. 2017

03. '이것'이 없으면 볼 수 없는 그림

<손바닥 위 미술관>

우의적인 루이 15세의 초상

샤를 아메데 필립 반 루(Charles Amédée Philippe van Loo, 1719-1795) 作, <우의적인 루이 15세의 초상(Allegorical portrait of King Louis XV)>, 1762년, 캔버스에 유채, 67cm×56cm, 베르사유 궁 박물관 소장, 베르사유.


그림 속 상징들을 살펴보니 통치자가 지녀야 할 미덕을 우의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왜 이게 루이 15세의 초상화라는 걸까?

지금까지 우리는 그림 속 등장인물들의 정체나 그들이 상징하는 것들, 그들을 통해 화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저들 중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인 루이 15세는 없었다. 설마 왕의 초상화라면서 주인공이 등장하지도 않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걸까?!

여기서 먼저 루이 15세의 또 다른 공식 초상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 초상화를 그린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루이-미쉘 반 루(Louis-Michel van Loo)다. 

루이-미쉘 반 루 作, < 프 랑 스 국 왕 루 이 15세의 초상(Por trait d e L o u i s X V , ro i d e France)>, 1760년, 베르 사유 궁 박물관, 베르 사유.


그는 반 루 집안의 또 다른 화가로 샤를 아메데 필립의 친형이다. 루이-미쉘이 그린 왕의 초상화와 <우의적인 루이 15세의 초상> 속에 있는 이들을 비교해보면 다들 어딘가 왕과 닮은 느낌은 있지만 동일인물이다 싶은 인물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럼 대체 루이 15세 본인은 뭘 보고 이 작품이야말로 가장 마음에 드는 초상화라고 했던 걸까? 단순히 작품이 담고 있는 여러 좋은 의미와 상징이 마음에 들었던 거라면 굳이 최고의 초상화라고까지 말할 이유는 없었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이 작품이 완성된 이듬해에 루이 15세가 샤를 아메데 필립 반 루에게 왕의 수석 화가자리를 내려준 것을 보면 진심으로 이 초상화를 마음에 들어 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질문은 잠시 넣어두고 이 작품의 구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얼굴만 선으로 이으면 완벽한 원형의 구도가 형성된다. 그리고 그 원의 정중앙에는 부르봉 왕가를 상징하는 백합문장(플뢰 드 리)이 새겨진 큰 거울이 있다. 거울의 중앙, 빛을 반사하는 지점이 바로 얼굴들로 이루어진 큰 원의 중심점이 된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1638년에 출간된 《신기한 원근법(La Perspective Curieuse)》이라는 책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다. 파리 출신의 수도승이자 물리학자인 장 프랑수아 니세롱(Jean-François Nicéron)이 펴낸 이 책은 광학이론을 연구한 실험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 착시를 이용한 아주 신기한 회화 기법이 있다. 위 사진 자료에 그 내용과 원리가 나와 있다. 전혀 다른 여러 인물들의 얼굴을 그려 놓고 특수 렌즈를 통해 그 얼굴들을 보면, 각 인물들의 얼굴 일부분이 모여 다시 전혀 다른 한 사람의 초상화로 완성된다는 신기한 내용이다.

장 프랑수아 니세롱, 《신기한 원근법》, 1638년.

장 프랑수아 니세롱, 《신기한 원근법》, 1638년.


《신기한 원근법》에서 소개한 왜곡의 방법 중 광학적 방식의 굴절 왜곡상에 대한 부분을 보면, 12인의 터키인 초상을 이용해 루이 13세의 초상화를 완성하는 과정이 나온다. 이 방식으로 초상화를 그리려면 먼저 다이아몬드처럼 여러 굴절면이 있는 렌즈를 이용해서 왕의 초상을 여러 조각으로 해체한 뒤에, 해체된 조각들을 바탕으로 다른 인물들의 초상을 그 수만큼 그리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는 과정도 매우 복잡하지만 완성된 초상화를 보는 법은 더 골치가 아프다. 각각의 인물들로부터 처음에 해체한 일부분만 따로 모아서 다시 한 사람의 초상화를 보려면 특수 제작된 해독렌즈가 있어야만 한다. 해독 렌즈가 없으면 최종적인 왕의 초상을 확인할 수 없으니, 초상화도 완성될 수 없는 셈이다. 무척 까다로운 작업인 데 비해 비효율적이다.

결국, 이 작품을 위한 맞춤 해독경이 없는 한 화가가 여러 신들 사이에 숨겨둔 루이 15세의 진짜 초상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의의 여신의 눈과 전쟁과 지혜의 여신의 입이 루이 15세의 초상화를 이루는 신체의 일부라고 한다. 정의와 부정을 감별하는 눈으로 세상을 보고, 전쟁과 지혜의 여신의 힘을 빌려 명령을 내림으로써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왕의 미덕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공명정대함, 관용, 영웅적 기백, 관대함, 군사적 재능과 지혜까지 그 모든 것이 합쳐져 완성된 인물이 바로 당신입니다” 라고 말하는 작품이니, 루이 15세가 아주 흡족해했을 수밖에. 어떻게 보면 인문학적 소양과 회화적 기술을 넘어 광학적 지식까지 동원한 이 작품이야말로 자크 루이 다비드와는 다른 아주 고차원적인 아부의 표상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해독경이 없으면 이렇게 공들인 아부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인 듯하다.



화가가 광학이론과 같은 과학지식까지 동원해 이런 교묘한 트릭을 감춘 신기한 작품을 그렸다는 점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는 평소 광학이론 서적을 읽다가 아이디어를 얻을 정도로 샤를 아메데 필립 반 루의 지적 수준이 높았다는 점이다. 오늘날에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쉽게 지식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저 시대에는 지식과 정보에 접근 권한이 있다는 것은 곧 힘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른 하나는 화가와 의뢰인이 특수 제작된 렌즈와 같은 광학 기기를 이용해 이런 실험적인 그림을 그리고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윤택한 환경에 있거나 특권층에 속하는 부류였다는 점이다. 즉, 철저히 상류층에 의한, 상류층을 위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프랑스 왕의 눈을 사로잡았던 참신한 기법이었건만, 그리기도 복잡하고 감상하기도 번거로웠던 탓인지 크게 유행을 하지는 못했다. 화가의 이름도 시간의 흐름 속에 대중들로부터 차차 잊혀졌다. 하지만 반 루는 후대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것에 대해 그다지 속상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대중의 평가를 염두에 두기보다는 의뢰인의 만족도를 중시하는 화가였던 듯하기 때문이다. 그가 소수의 권력자를 위한 그림만 그렸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혹은 반 루의 기준에서 볼 때 우리들은 그가 그린 왕의 ‘용안’을 뵐 자격을 갖추지 못한 감상자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회에 이어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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