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길, 10대가 묻고 고전이 답하다>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의지, 서사시의 영웅들
하이데거와 부버의 눈으로 읽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 감동과 재미와 판타지의 삼중주
호메로스(Homeros, 생몰년도 미상)
관계 능력을 발휘하는 리더, 오디세우스
오디세우스의 동지들은 ‘좌절’의 모래알을 먹고 ‘낙담’의 눈물을 마시는 데 익숙해지고 말았습니다. 바다에서 보낸 역경의 세월이 무려 20년이었으니 그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세이레네스의 섬을 가까스로 벗어나는 순간에 집채만 한 파도가 배를 집어 삼킬 듯이 덮쳐 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선원들은 “모두 공포에 사로잡혀 자기도 모르게 노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습니다.
“모든 노가 물결에 휩쓸려 떨어지는” 바람에 그들의 배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공포에 억눌려 선원들의 손이 마비되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디세우스의 동지이기 이전에 부하이며 국민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의 국왕이니까요. 넓은 가슴으로 그들을 끌어안고 자애로운 손길로 그들을 보살피는 지도자의 덕성이 빛을 발합니다. 희망의 불씨를 찾기 어려운 절망의 어둠 속에 갇혀 있을 때 오디세우스는 동지들의 기운을 북돋우는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파멸”할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동지들을 격려합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지혜로운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동지들의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오디세우스의 격려와 조언에서 리더십의 참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라는 이름을 들어 보셨나요? 한국의 대중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겠지요. 1923년 《나와 너》 라는 저서를 통하여 인간의 능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 “관계 능력”임을 강조했던 오스트리아의 사상가입니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너’의 입장에 서서 ‘너’의 말에 경청하고 ‘너’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너’의 생각에 공감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나와 너’는 서로 소통하는 진정한 ‘만남’을 가질 수 있다고 부버는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말을 빌려서 이야기한다면 “존재 전체를 기울여” 상대방의 말에 “응답하는” 대화를 나눌수록 상대방과 조화롭게 소통하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능력이 바로 부버가 말했던 ‘관계 능력’입니다.
부버의 눈길로 《오디세이아》 를 읽는다면 오디세우스를 탁월한 관계 능력을 발휘하는 리더라고 인정하지 않을까요? 동지들이 절망의 막다른 절벽에 부닥쳐 주저앉아 있을 때마다 오디세우스는 각각의 사람을 ‘나’의 친구인 소중한 ‘너’로 받아들였습니다. ‘너’의 인격을 존중하고 ‘너’의 축 처진 어깨를 추스르면서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순간에도 ‘나와 너’의 협력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일도 나중에 추억으로 남게 될 거야. 자,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보지 않겠나.”
오디세우스의 위로와 권유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부버가 말한 것처럼 “나와 너” 사이에 정성을 기울여 대화하고 소통하는 조화로운 “상호 관계”가 공동체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해법임을 알게 됩니다.
‘인간다움’의 교훈을 일깨우는 고전 중의 고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통하여 인간에 대한 이해심을 키워 주는 고전(古典) 입니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공생하고 협력하는 것이 인생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니까요. 그렇다면, 고전이란 무엇일까요? 옛 시대의 저작물이지만 시대를 초월해 현대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교훈을 안겨 주는 휴머니즘의 책을 고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본래 ‘휴머니즘(Humanism)’과 ‘휴머니티(Humanity)’의 어원은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라고 합니다. 후마니타스는 ‘인간다움’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14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인문주의자들은 ‘인간다움을 연구’하는 것을 인문주의의 핵심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인간다움을 연구’하기 위하여 주로 어떤 책을 읽었을까요? 그들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던 책은 고전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어, 로마어, 라틴어로 기록된 고전을 읽고 번역하고 분석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고전 속에 진정한 ‘인간다움’이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캄캄한 지층의 어둠을 뚫고 황금을 캐내는 광부들처럼 ‘고전’이라는 아름다운 조개 속에서 ‘인간다움’이라는 진주를 얻기 위하여 인문주의자들은 촛대의 심지가 닳아 없어지는 것도 모른 채 밤을 새워 고전을 읽고 또 읽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들이 가장 아꼈던 고전의 목록에서 언제나 제외되지 않았던 책이 바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였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독자가 읽더라도 ‘인간다움’의 교훈을 일깨워 주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인문주의자들의 가슴에 ‘인간다움’을 각인시켰던 요소들이 다양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오디세우스가 보여 주었던 사랑과 소통의 리더십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미덕의 보물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서사시의 웅장한 스펙터클을 자랑하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 위대한 고전 속에는 수천 년이 지나도 도무지 식을 줄 모르는 따뜻한 인간다움의 온기가 흐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