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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15. 2017

08. <적과 흑> 개혁의 희망을 전하려는 마지막 용기

<인간의 길, 10대가 묻고 고전이 답하다>

평등한 사회로의 개혁을 향한 목마름

‘혁명’을 통해 이해하는 프랑스의 역사와 스탕달의 《적과 흑》
- 개혁의 희망을 전하려는 마지막 용기

스탕달 (Stendhal, 1783~1842)



출세를 위해 선택한 위선

“가장 선하다는 것도, 가장 위대하다는 것도, 모든 것이 위선이야.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그것은 사기일 뿐이야 ”
- 《적과 흑》(스탕달 지음, 서정철 옮김, 동서문화사) 참조

왕정복고 시대의 불평등한 사회에서 출세하려면 카멜레온처럼 위선의 보호색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쥘리엥. 그도 본래는 위선을 즐겨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을 위선자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불평등한 사회의 구조와 환경일까요? 레날 가문의 가정교사직을 그만두고 브장송 신학교에 들어가서 사제의 길을 걸어갈 준비에 착수했던 쥘리엥에게 가장 빠른 속도로 귀족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신학교의 교장 피라르의 추천을 받아 라 몰 후작의 비서로 일하게 된 쥘리엥은 레날 부인에게 접근했던 것처럼 후작의 딸 마틸드를 유혹합니다. 쥘리엥의 용모와 재능에 반한 마틸드는 결국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됩니다. 귀족의 신분을 갖기 위한 출세의 전략을 수행하다 보니 쥘리엥은 마틸드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하는 것으로 위장하는 두 번째 위선의 ‘흑색’ 옷을 입고 말았습니다.

출세를 위한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진행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쥘리엥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마틸드와의 결혼을 눈앞에 둔 순간에 레날 부인이 쥘리엥과의 연애 관계를 라 몰 후작에게 사실대로 털어 놓은 것입니다. 처음부터 결혼을 반대해 오다가 딸의 임신 때문에 마지 못해 쥘리엥을 받아들였던 후작은 가차 없이 파혼을 서둘렀습니다. 사위가 될 사람이 평민 출신인 것도 못마땅했는데 불륜의 주인공이었다니!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 1954 > 

                                        

 라 몰 후작의 입장에서는 파혼을 단행할 충분한 명분을 얻은 것이 아닐까요? 위선의 옷 갈아입기를 반복하면서 출세의 산정을 향해 쉬지 않고 올라왔던 쥘리엥은 정상을 한 치 앞에 두고 평평한 평민의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 내리막길을 예약받았습니다. 쥘리엥의 분노는 활화산의 마그마처럼 분출했습니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던 쥘리엥은 넘어서는 안 될 이성의 마지노선을 넘어 버리고 맙니다. 울분을 토해 내는 충동의 노예가 되어 레날 부인을 향해 권총의 방아쇠를 당깁니다. 다행히도 레날 부인은 경상을 입었지만 한 번 발사된 총알은 돌이킬 수 없는 죄목이 되어 쥘리엥을 사형수의 운명 속으로 밀어 넣고 말았네요. 그러나 아직도 사랑을 간직하고 있던 레날 부인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남자는 쥘리엥이었나 봅니다.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와서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그의 가슴에 안겨 주는 레날 부인. 부인의 사랑은 마중물이 되어 쥘리엥의 가슴 밑에 잠잠히 가라앉아 있던 사랑의 물줄기를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이미 사형을 선고받은 쥘리엥은 인생의 마지막 무대에서 위선의 ‘흑색’ 옷을 벗어 버리고 사랑의 씨실과 날실로 직조한 ‘진실’의 옷을 입었습니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까지 몇 달 동안 레날 부인과 함께 직조한 ‘진실’의 옷은 쥘리엥을 인간다운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온기로 감싸 주었습니다.


불평등의 부조리를 증언하려는 용기

인간다운 인간의 본모습을 찾기 전까지 신분 상승이라는 야망 때문에 인간관계를 소홀히 한 것도 쥘리엥의 잘못이고 폭력을 휘두른 것도 그의 죄입니다. 그러나 쥘리엥의 야망 뒤에는 신분의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부조리를 혐오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사형집행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에 혼잣말로 “나도 충분히 용기를 낸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 ‘용기’란 무엇일까요?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메시지를 전하려는 용기가 아닐까요? 프랑스 국민들이 겪고 있는 불평등의 부조리를 몸으로 증언하려는 용기가 아닐까요? 누구나 평등한 시민으로서 성공의 기회를 공평하게 공유할 수 있는 사회. 그러한 공정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희망을 ‘죽음’을 통해 남기려는 의지가 아닐까요?

“그래, 탓할 곳이 하나도 없을 만큼 모든 게 잘 된 거야. 이만하면 나도 충분히 용기를 낸 거야”
- 《적과 흑》(스탕달 지음, 서정철 옮김, 동서문화사) 참조

라 몰 후작에게 쥘리엥을 추천한 피라르 교장의 추천사에서 알 수 있듯이 쥘리엥은 “보잘 것 없는 평민 출신이지만 드높은 기개를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인간은 신분의 높낮음이 없는 ‘평등한’ 사회에서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아 자신의 능력을 제약 없이 펼치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비전을 밝혀 주고 떠났으니까요. 그 비전이 곧 ‘7월 혁명’으로 표현된 민중의 열망이 아닐까요? 프랑스의 저명한 시인이자 작가인 루이 아라공의 말처럼 소설 《적과 흑》 은 “역사적 리얼리즘의 모델”로 평가받을 만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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