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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18. 2017

05. 천장이 생기다.

<제주에서 내 집 짓고 살기>

서로의 땀냄새가 익숙해지고, 모기에 뜯기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우리의 작업은 박차를 더했다. 그렇게 안팎으로 거푸집을 짱짱하게 짜놓고 열심히 배운 나비 반생이까지 꾸~욱 소리가 나게 틀어놓으며, 우리는 타설 준비를 마쳤다.

내 앞에 무수히 펼쳐진 교차로 지점들은 내 엉덩이와 함께할 엉덩이 방석만 있다면, 얼마든지 묶어나가 주겠다!!!

세상 제일 더운 날, 우리집 바라시 일을 책임지고 해준 탱크! 지금 생각해도 나중 생각해도 고마와~!


밤잠을 설칠 만큼 기다렸던 슬라브 타설 날이 되어 아침 일찍 범프카와 레미콘 차가 한 대씩 도착했다. 저번 마지막 타설에 유로 폼이 터진 기억이 있어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기도했다. ‘제발 터지지만 말길… 터지지만 말길’ 계속 주문처럼 읊조릴 때 큰 소리를 내며 범프카가 시멘트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붐 대를 잡은 긴장된 남편 얼굴에 시멘트가 튀기 시작했다. 뿔리와 나는 건물 전체를 돌아다니며 혹시라도 벌어지는 틈새가 있나 확인하면서 우리 집 천장에 드디어 시멘트가 부어지는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았다.

갑자기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끝난 것도 아닌데 여지까지 힘들었던 일들도 스치고, 괜스레 가슴이 찡해져 이건 무슨 감정인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 감정이 휘몰아치는 순간에 우리 집 2층 슬라브에 시멘트가 가득 부어지고 시멘트물이 벽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서포트가 공구리 무게에 파르르 떨리는데, 와~ 정말 이 공구리 무게가 장난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여지까지 아무 사고 없이 잘 버텨준 게 신기하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건 왜인지.

이월이가 기분이 제일 좋을 때는 해변도로를 산책하며, 마구마구 찍! 찍! 영역표시를 할 때! 내가 기분이 좋을 때는 저런 복장을 하고도 아무 눈총을 받지 않을 때!

하루는 서포트 받치는 작업을 쉴 새 없이 하고 있을 때였다. 서포트의 길이를 조절해 핀을 꽂아 꽉 조여서 고정하는 일이었는데, 남편이 하나를 제대로 고정을 안 시켜 순식간에 서포터가 내 뒤로 우당탕탕 쓰러지면서 무릎 뒤를 세게 긁었다. 얼른 바지를 올려 보니 심하게 살갗이 쓸려 피가 나고 있었고, 다들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나를 걱정하며 우왕좌왕했다. 사실 그다지 아프지 않았는데 상처 비주얼이 그럴싸해 괜히 아픈 척하며 남편에게 짜증을 냈더랬다. 그런데 갑자기 그때,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다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와주러 온 친구들이 다치면 우리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이 여름에 항상 땀이 흐르는 목덜미에 모기 서너 마리는 장식으로 달고 일을 같이 해주던 고마운 친구들, 또 호시탐탐 자유를 꿈꾸던 이월이, 그리고 아직 미완성인 이 집?에게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샘솟는 순간이었다.

집이라는 건 단순히 언덕 위에 하얀 집처럼 표면적으로 보이는 외형이 아니라 나를 닮고, 남편을 닮고, 우리의 걱정과 한숨, 바람이 들어가 빚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무더운 한여름 우리의 걱정과 한숨, 바람으로 빚어진 집에 천장이 생기며, 범프카 사장님, 함께 해준 친구들과 시원한 수박을 쪼개 먹으며 네버엔딩 수다로 그날의 긴장을 모두 풀어낼 수 있었다. 온 얼굴과 눈가에 시멘트가 잔뜩 튄 남편도 살이 따가워 괴로울 만도 한데 얼굴엔 웃음이 떠나질 않는, 잊지 못할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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