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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20. 2017

02. 선생님, 정말 심리상담이 저에게 도움이 될까요?

<제 마음도 괜찮아질까요>

등장인물
철하 :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심리학과 학생으로 밝고 쾌활한 성격이다. 은주, 석영, 지선이 심리상담과 심리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은주 : 중소기업 인사팀에 근무하고 있다. 괴팍한 상사와 마찰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서 마음이 괴롭다.

석영 : 사회학을 전공하는 학생인데, 교양과목으로 듣는 심리상담 수업에서 몇 년 만에 철하와 재회한다. 복학 전 취업한 직장에서 끔찍한 일을 당한 기억이 있다.

지선 : 미술을 전공한 후 미술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중학교 시절, 남학생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한 경험 때문에 아직까지 남자를 대하는 것이 불편하다.

은영 : 철하의 선배로 대학원생이자 학생상담센터 수련생. 석영이 학생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은주 씨, 확실히 해둘 게 하나 있어요. 심리상담이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주는 ‘마법의 알약’은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렇군요. 그런데 선생님, 마법의 알약 정도는 아니더라도 도움은 되겠죠?”
“물론이죠. 상담 효과는 사람에 따라, 도움받기 원하는 주제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지만 변화하려는 마음이 있고, 변화하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하다면, 분명 효과가 있답니다.”
“변화라고요? 상담의 목적은 위로가 아닌가요?”

물론 내담자가 상담을 통해 원하는 것이 위로라면 당연히 가능합니다. 정말 고통스럽고 지쳐서 그게 누구든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을 경우도 있으니까요. 가족, 연인,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들은 이런 경우, 안타까운 마음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위로해주기보다는 책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때, 보다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심리상담가의 위로는 큰 힘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 상담자도 따지고 보면 생판 남인데, 그런 사람에게 돈을 내고 받는 위로가 무슨 위로냐고 말이죠.”

은주는 센터장의 말에 실소를 터뜨립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내고 받는 위로라니, 자신이 생각해도 그런 위로는 전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인들에게 심리상담을 받을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대체로 ‘심리상담으로 위로를 받는다고 해서 네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심리상담은 나를 치유해줄 마법의 알약’이며 ‘심리상담의 역할은 위로가 전부’라는 것이 심리상담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입니다. 은주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말 상담이 필요한 사람도 ‘나는 위로가 필요 없다’면서 상담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 역시 돈을 내고 받는 위로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원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것을 변화라고 말씀하시니 좀 억울하네요. 힘든 마음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나 환경 때문이거든요. 정작 변화가 필요한 것은 힘들어하는 그 사람이 아니라 주변 사람이나 환경 아닐까요? 그런데 그들은 변할 생각도 없고 변할 의지도 없는데, 오히려 힘들어하는 당사자가 변해야 한다니 잘못된 것 아닌가요?”

은주는 아버지와 최 부장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순간 그 둘이 폭언을 퍼붓던 모습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두려운 마음마저 듭니다. 이내 억울함이 몰려오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죄송해요.”

은주의 말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은 심리상담을 받으러 오지 않습니다. 알코올중독 같은 심각한 문제를 지닌 남편이 아니라 그 남편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내가 심리상담을 받으러 오고, 폭언으로 딸에게 상처를 입힌 아버지가 아니라 상처받은 딸이 심리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허다하죠.

신체의 건강처럼 마음의 건강에도 역설이 존재합니다.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할 사람들은 헬스장에 오지 않는데, 올 필요가 없을 정도로 건강한 사람들은 열심히 와서 매일 운동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심리상담에 관심을 갖고 심리상담을 받으려는 사람은 그 자체로 이미 건강한 마음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작 심리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은 심리상담센터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초래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나만 왜?’라며 억울한 마음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은주 씨, 잘잘못을 따져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한다면, 심리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은 피해자에 가까워요. 그러나 상대가 변하지 않고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순 없잖아요. 그들이 변하지 않더라도 내가 변한다면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답니다.”
“그래도 변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은주의 심정도 이해 갑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변화를 거부할 순 없습니다. 사람은 살아 있는 한, 원하든 원치 않든 계속 변하게 마련이니까요. 매일 보는 가족의 외모도 실은 변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어른은 매일 조금씩 늙어가죠. 너무 미세한 변화라서 알아차리기 쉽지 않지만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든 변화하고 있죠.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변화의 유무가 아니라 변화의 방향 아닐까요? 내가 원하는 쪽으로 변할지, 아니면 그저 흘러가는 대로 변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심리상담은 우리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입니다. 보다 나은 변화를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변화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연습과 시행착오도 잘 겪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심리상담가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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