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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20. 2017

01. 말은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지적성숙학교>

어떻게 말을 전달할 것인가: 세상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듣게 하자!

: 우치다 다쓰루(철학, 문학, 사상,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일본의 대표 사상가)


‘말을 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말을 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어떤 사회활동을 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정치든 비즈니스든 학술이든 예술표현이든. 이 주제는 우리가 앞으로 성숙해가는 데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는 노이즈로 가득 차 있다.

모든 생명체는 ‘쓸데없는 정보는 가능한 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기능을 처음부터 갖고 태어난다. ‘정보를 받아들인다’가 아니라 ‘받아들이지 않는다’이다. 노이즈로 가득 차 있는 세상에서 입력되는 모든 정보에 균등하게 주의를 기울이다가는 몸이 견디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의 지성은 자신에게 정말로 의미 있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기본 모드는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이다. 그러므로 내가 쓰고 있는 이 말이, 이 글이 ‘노이즈’로 판정되면 거기서 ‘끝’이다. 아무도 읽지 않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정처 없이 공중을 떠다니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말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자신에게로 향한 질문은 멈출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게 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노이즈로 가득 차 있는 세상 속에서 내가 하는 말이 노이즈로 판명되지 않고 상대방에게 전달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사람은 자기 자신을 향한 질문은 노이즈로 간주하지 않으므로 잘라버릴 수 없다. 지금 하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가까이에 있는 친구를 향해 물어봐라. 가령 “있지, 지금 흔들렸어?” 상대가 “아니, 흔들리지 않았어”라고 지체 없이 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질문을 듣고 그것에 대답하는 것은 뇌의 일이지만 흔들렸는지의 여부를 감지하는 것은 몸의 일이기 때문이다. 뇌는 자신의 몸에게 “지금 흔들렸어?”라고 물어보고 “아니”라는 답을 받고 나서가 아니면 “흔들리지 않았어”라는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여기에 한순간의 ‘틈’이 생긴다. 이곳이 승부처다. 


‘알았다’의 함정-다 알면 커뮤니케이션은 끝!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상대방이 ‘알았다’라고 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훌륭히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많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네가 뭘 말하고 싶은지는 잘 알겠다”라고 딱 잘라 말하면 상처를 입는 경우가 있다. 그 말인즉슨 “그러니까 이제 입 다물어”라는 뜻이니까.

흔히 누가 좋아졌을 때 상대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당신을 완전히 이해했어”일까? 정말 그런 말을 들으면 기쁠까? 아니다. 왜냐하면 그건 “그러니까 당신과는 더 이상 안 만나도 돼. 더 이상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어”라는 뜻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좋아졌을 때 그 사람의 입에서 우리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당신을 더 알고 싶어”이다.


벌레 먹은 메시지의 구멍을 메운다.

수업 중 교실 안의 학생들 모두가 교사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기적의 순간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뒤에, 들립니까?”라고 물어봤을 때이다. 놀랍게도 이 질문에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내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질문에는 정확하게 대답하고 있다. 잘 생각해보면 이때 학생들은 실로 복잡한 조작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알아듣지 못한 소리를 ‘아마 그걸 거야’라고 상상해서 보충하는 것이다. 


에드거 앨러 포의 《황금 풍뎅이》라는 소설이 있다. 이 책은 온통 벌레 먹은 암호문을 해독해 해적 키드 선장의 보물을 찾아내는 이야기로 암호 해독을 위해 주인공이 하는 일이 앞에서 말한 “들리지 않습니다”와 같은 조작이다. 해안에서 주은 낡아빠진 양피지에 신기한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잘 모르는’ 정보입력이다. 그래서 상황으로 판단해 ‘아마 이런 것을 그린 걸 거야’ 하고 추측한다. 그런 식으로 벌레 먹은 메시지의 구멍을 메워갔다. 구조적으로는 “들리지 않습니다”와 같은 형식이다. 그것이 인간의 지성이 가장 활발하게 발동할 때의 모습이다.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몸에 묻는다’는 자세를 취할 때 몸은 개방 상태가 된다. 그리고 자신의 신체기억 저장고 속을 더듬어 찾아서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 모니터를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벌레 먹은 상태의 메시지’의 구멍을 자기 힘으로 보충하려고 한다. 

이 작업을 ‘지성적’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다른 무엇인 지성적인 작업일까? ‘더 많은 데이터를’ 하면서 앞으로 달려나가는 자세, 이것이 바로 ‘배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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