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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20. 2017

02. 분위기만 살피지 말고 말을 하라.

<지적성숙학교>

‘분위기’를 탓하며 거대한 무책인 체제에 빠져 버린 나라

: 분위기만 살피지 말고 말을 해야 한다 – 오카다 겐지(정치학자)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말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태반의 일들은 일어나도 그것이 전달되지 않거나 전할 수 있어도 전해지지 않은 채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된다.



이지메는 있지만, 이지메는 없다.

교실에서는 이지메가 일어나고 있다. 동급생인 S가 이지메를 당하고 있다. 4명 정도가 중심이 되어 S를 이지메하고 있다. 그들이 서로 장난치고 시시덕거리고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도 보이지만 그저 서로 장난치는 것뿐이라면 네댓 명의 아이들이 서로 협력하여 한 아이를 놓고 장난칠 리가 없다.

지금 반에는 S와 S를 편든 M과 ‘같은 편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다. 4인조가 반 아이들에게 그러라고 윽박지른 것도 아니다. S를 이지메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방관자의 자세를 취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너도 S같이 되고 싶냐?”라고 위협적인 말을 들었기 때문도 아니다. 어머니가 읽다가 내려놓은 신문을 힐끗 보니, ‘이지메로 자살, 도쿄의 중3 남자아이’라는 기사가 있다. “너희 반에서는 이지메 같은 거 없니?” 하는 질문을 받는다. “별로 없는” 하고 입을 움직인다. 그런 거 없어. 있지만. 하지만 그건 이지메가 아니라 장난치는, 아니 S를 싫어하는 것뿐이야. 없어. 이지메, 있지만 없어. 


방사성물질의 영향은 있지만, 영향은 없다.

2011년 3월 도호쿠를 중심으로 엄청나게 큰 지진이 일어나 80년 만에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가 멈춰 서고 원자로가 폭발했다. 거기서 다량의 방사성물질이 누출되어 지금도 계속 여기저기로 돌아다니고 있다. 

사고 후 3년쯤 지나자 갑상선암에 걸린 아이들이 급증하고 있음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현재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통상 100만 명이나 200만 명에 한 명 정도밖에 발생하지 않는 어린이 갑상선암 발병률이 50배나 늘었으니, 정확한 분석은 못한다 해도 “그런 거 원전사고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후쿠시마의 아이들에게 그렇게 많은 병이 발생했다면 ‘원전사고와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일부 신문과 텔레비전과 잡지를 빼고는 상당수의 대형 언론들이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후쿠시마에는 뭔가가 일어났는데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다.


합리적인 의심을 무시하는 분위기

‘일어나가 있는데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한다’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최대의 이유는 모두가 ‘말’이 아니라 ‘분위기’만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교실에서는 이지메가 일어나고 있고, 후쿠시마 아이들은 다른 지역보다 높은 비율로 병에 걸리고 있다. 그것은 일어난 사건이다.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 전하려는 사람들을 ‘유언비어 제조기’라든가 ‘지나치게 벌벌 떠는 것들’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에게 “왜 합리적인 의심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것을 없는 것으로 하고 싶어 하느냐?”라고 물어도 그들은 대답하지 않고, 대답할 수 없다. 이유는 분위기를 살피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분위기’를 탓하며 거대한 무책임 체제에 빠져 버린 사회

분위기의 무서운 점은 ‘아무도 그것을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고’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이 미묘하게 다르며’ ‘그럼에도 왠지 “있어, 있어” 하기 쉽고’ 그런데도 ‘미래의 사람들에게 전달할 기록으로는 남지 않는다’는 데 있다. 

칠십 수년 전에 일본은 군함과 전투기를 움직이는 데 사용할 석유 생산량이 일본의 720배나 되는 미국과 전쟁을 시작하는, 광기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결정을 하여 병사와 민간인을 합쳐 310만 명을 죽게 했다. 개전 직전 젊고 우수한 관료들이 상당히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하여 “반드시 집니다”라고 보고도 했건만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최고결정을 내린 한 정치가는 자신 또한 이기리라는 예측은 천에 하나도 없음을 확신했지만, “사태가 그렇게 진전되어가는 속에서 이미 반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슈퍼 수재 엘리트였던 사람들이 1억 명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며 분위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 발언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는 분위기만 탓하는 ‘거대한 무책임 체제’에 빠져 있다.


분위기를 말로 명확히 논리적으로 기록하라.

인간은 분위기에 속박당한다. 그러나 분위기에 속박당하는 데서 멈추면 검증을 할 수 없고 바르게 반성할 수도 없고 교훈을 만들 수도 없다. 

미래 세대여, 거대한 바보짓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분위기만 살피지 말고 말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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