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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21. 2017

04. 심리상담의 전제조건, 변화를 향한 ‘강력한 동기

<제 마음도 괜찮아질까요>


등장인물
철하 :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심리학과 학생으로 밝고 쾌활한 성격이다. 은주, 석영, 지선이 심리상담과 심리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은주 : 중소기업 인사팀에 근무하고 있다. 괴팍한 상사와 마찰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서 마음이 괴롭다.

석영 : 사회학을 전공하는 학생인데, 교양과목으로 듣는 심리상담 수업에서 몇 년 만에 철하와 재회한다. 복학 전 취업한 직장에서 끔찍한 일을 당한 기억이 있다.

지선 : 미술을 전공한 후 미술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중학교 시절, 남학생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한 경험 때문에 아직까지 남자를 대하는 것이 불편하다.

은영 : 철하의 선배로 대학원생이자 학생상담센터 수련생. 석영이 학생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도움을 준다.




“변화하고자 하는 동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이 아니라, 돈과 시간을 내서 일부러 심리상담을 받으려는 것 자체가 변화를 원한다는 의미 아닌가요?”

심리상담의 목표가 상처를 치유하려는 것이든, 더 나은 삶을 만들려는 것이든, 모든 변화는 일단 내담자의 가장 아픈 상처를 건드려야 합니다. 기억하기 싫은 지난 일을 다시 이야기해야 할 수도 있고, 자신의 못난 모습을 계속 확인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선생님 앞에서 잘하지 못하는 부분도 보여야 하고, 아픈 곳을 치료 받기 위해서는 의사에게 환부를 드러내서 의사가 약을 바르도록 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환부를 건드리는 순간, 상처를 입었을 때보다 더 큰 고통을 느낄 수도 있는데, 그 고통이 싫다고 환부를 감추려고 한다면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물론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환자에게 마취할 수도 있겠지요. 문제는 마음은 마취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고통은 그저 견딜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혼자가 아니라 상담자와 함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변화의 동기는 이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야 합니다. 당장 심리적으로 힘들어서 상담을 받으러 왔는데, 변화의 과정이 훨씬 고통스럽게 느껴져서 포기하시는 분도 많거든요.”



변화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변화의 동기가 강력해야 한다는 말에 은주의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가슴이 답답해지고, 더욱 걱정되네요. 그런데 선생님, 아픔을 참고 견디기만 하면 변화할 수 있을까요?”
“처음 보는 문제를 풀려고 하거나, 이전에 다뤄보지 못했던 악기를 배우려는 상황이라면 잘못하는 부분을 빨리 드러내 선생님에게 배우면 됩니다. 이런 경우는 비교적 빠르게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이 어떤 문제를 오랫동안 잘못된 방법으로 풀어왔다거나, 악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면서 자기만의 방법대로 악기를 다루어왔다면 어떨까요?”
“자신에게 이미 익숙하고 몸에 밴 기존의 잘못된 방식을 버려야 하니 더 힘들고 어렵겠죠.”
“맞아요. 성인이라면 누구나 주변 사람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찾게 됩니다. 설령 그것이 자신과 타인을 힘들게 하는 것일지라도 말이죠. 심리상담은 자신을 편하게 만들 새로운 방법을 배우고 습득하는 과정이기도 한데, 기존의 것을 포기하고 바꿔야 하기 때문에 변화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게다가 기존 방식을 포기하기 어렵게 만드는 강력한 요인이 있습니다. 바로 익숙함입니다. 익숙함은 곧 편안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어색함은 굉장한 거부감을 줍니다. 사람들은 제아무리 나쁜 것이더라도 익숙하면 받아들이고, 좋은 것이더라도 어색하면 거부합니다. 심리상담을 통해 나에게 익숙하지만 고통스러운 것을 포기하고, 어색하지만 좋은 것을 시도하라고 제안하면 상당한 저항감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은 흥분되고 설레기보다는 두렵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일이니까요. 결국 이런 불안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기존 방식대로 살겠다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기회인 심리상담을 포기합니다. 

은주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잦은 야근과 과도한 업무로 체력이 부쩍 약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헬스장에 등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운동을 하러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고, 억지로 일어나서 운동을 하더라도 상쾌하기는커녕 몸이 더 아프기만 한 것 같았습니다. 운동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이 더 약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불편했던 것처럼, 심리상담도 그렇다면 정말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은주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최근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자신의 마음 상태를 봐서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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