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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22. 2017

05. 마음을 나누는 일인데, 상담비라니?

<제 마음도 괜찮아질까요>



등장인물

철하 :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심리학과 학생으로 밝고 쾌활한 성격이다. 은주, 석영, 지선이 심리상담과 심리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은주 : 중소기업 인사팀에 근무하고 있다. 괴팍한 상사와 마찰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서 마음이 괴롭다.

석영 : 사회학을 전공하는 학생인데, 교양과목으로 듣는 심리상담 수업에서 몇 년 만에 철하와 재회한다. 복학 전 취업한 직장에서 끔찍한 일을 당한 기억이 있다.

지선 : 미술을 전공한 후 미술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중학교 시절, 남학생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한 경험 때문에 아직까지 남자를 대하는 것이 불편하다.

은영 : 철하의 선배로 대학원생이자 학생상담센터 수련생. 석영이 학생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도움을 준다.




“혹시…….”

은주는 궁금합니다. 센터장이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무슨 의미일지, 이 방을 나가면서 상담비를 계산하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상담실에서는 어떤 이야기든 어떤 감정이든 허용되니까요. 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상담실 밖의 기준이나 잣대로는 허용되지 않는 생각이나 감정을 느끼더라도 상담실 안에서는 솔직해져야 한답니다.”
“그럼, 용기내서 여쭤볼게요. 이렇게 저와 대화를 나눠주셨는데, 혹시 이것도 심리상담인가요? 제가 상담비를 지불해야 하나요?”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은주에게 센터장이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아, 지금은 심리상담을 받으시는 게 아니고 제가 심리상담에 대해 안내해드리는 것뿐입니다.”

은주는 센터장의 말이 모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하는 것은 심리상담이 아니라는 것 같은데, 그래서 상담비를 내라는 것인지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지 명확한 답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요하다면 돈을 낼 의향도 있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한 번 더 묻습니다.
“저, 그래서 상담비는……?”
“아, 제 말은, 심리상담이 아니니까 상담비는 안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하하.”

어색해 보이는 센터장의 웃음에 은주도 미소를 짓습니다. 그러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장사하셔도 돼요? 심리상담도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구박을 좀 받는답니다.”

은주의 표정과 말투에 센터장은 웃음을 터뜨립니다. 예민한 질문에 넉살 좋게 넘어가는 센터장을 보면서 은주는 갑자기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선생님, 제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심리상담은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심리상담을 받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심리상담을 하시는 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심리상담을 받으려는 사람을 만나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손님이라고 하나요, 고객이라고 하나요?”
“영어로는 클라이언트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상담실에 내방해 상담을 받는다는 의미로 내담자라고 하죠.”
“내담자라, 좀 생소하네요. 아무튼 내담자를 만날 때 상담자는 어떤 마음인가요? 다른 서비스업처럼 돈을 목적으로 한다면 굉장히 슬플 것같아요.”

분명 내담자의 마음보다 돈이 우선인 상담자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제대로 공부하거나 훈련 받지 않고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경우에는 내담자의 마음보다 돈을 우선시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제대로 훈련받은 상담자라면 내담자의 마음과 상담비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습니다.

“만약 내담자가 심리상담을 진행하고 싶지만 돈이 없다고 하면, 돈이 우선인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겠죠. 그러나 많은 상담자가 내담자의 사정을 세심하게 고려한답니다. 상담비를 나중에 내라고도 하고, 내담자가 낼 수 있는 만큼 깎아주기도 하죠.”
“악의적으로 상담비를 떼먹으려 든다면요?”
“아, 물론 그런 일은 가능하고, 또 실제로 일어나기도 해요.”

심리상담에서 모든 일은 경제 논리가 아니라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신뢰를 토대로 진행됩니다. 무작정 물건을 사고팔듯 깎아주거나 외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행복과 변화가 상담자에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손해를 볼지도 모르지만 내담자의 행복과 변화에 도움이 된다면, 상담자는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는 상담비가 너무 비싸지 않나 싶어요. 외국에는 보험이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우리나라는 병원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죠?”
“네, 안타깝게도 그렇죠. 그런데 상담비의 기능 중 하나는 심리상담에 대한 동기부여랍니다. 다소 부담스러운 상담비는 심리상담 과정에 더 몰입하게 만들고, 그동안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라도 쉽게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장치가 되기도 하죠.”



이런 이유로 어떤 상담자들은 상담비를 깎아주거나 상황에 여유가 생겼을 때 낼 수 있도록 유예해주는 것에 반대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그런 식의 배려가 결국 내담자의 동기를 저하시키고 무책임을 강화할 뿐이라고 역설합니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잘 훈련된 상담자라면 내담자가 호소하는 경제적 어려움이 정말인지 아닌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내담자가 단지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판단되면 상담비를 깎아주거나 유예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절묘한 균형이라고 말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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