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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천사가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전하다.

<잠에 취한 미술사>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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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베들레헴 마구간 안의 요셉의 꿈>

서양미술사에서 고대 신화와 기독교의 성서 이야기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빈번하게 다루어진 주제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꿈을 통해 신의 계시를 받는 장면들은 극적이고 흥미진진한데 특히 요셉의 꿈 이야기는 주목할 만하다. 나사렛의 목수이자 예수의 양아버지인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꿈들을 꾸게 된다. 처음에는 천사가 나타나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하게 되었음을 알려주고 마리아와 결혼하라고 말하는 꿈을 꾼다. 두 번째 꿈은 예수가 탄생한 후에 꾼다. 당시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이 새로운 유대인의 왕을 찾아 경배하려는 것을 보고 당황하여 갓난아이들을 모두 죽이려고 하였다. 이때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라는 명을 내리자 요셉은 즉시 이를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헤롯왕이 죽은 후 세 번째 꿈에서 천사는 요셉에게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스라엘로 가라고 지시한다. 이런 일련의 꿈 이야기들을 여러 화가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 하르먼스 판 레인도 <베들레헴 마구간 안의 요셉의 꿈>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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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가 보여주는 장면은 어두운 마구간 안의 풍경이다. 화면 오른쪽의 마리아는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를 감싼 채 밀짚에 기대앉아 자고 있고, 그 옆에는 송아지가 우리에서 머리를 내밀며 그들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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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안장과 천이 걸려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인다. 요셉은 구석에 앉아 머리를 받친 채 잠자고 있다. 화면 좌측으로는 문이 있고 문 옆에는 펌프가 서 있다. 이때 천사가 나타나 헤롯왕이 갓난아이들을 모두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요셉에게 알리고 이집트로 피신하라는 신의 말씀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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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구간 안의 풍경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천사의 주변에서 발산되는 빛이다. 천사를 따라 지붕 쪽에서 내려오는 빛 그리고 벽과 바닥에 스며들고 있는 빛은 공간의 깊이감을 형성한다. 빛은 천사의 날개와 소매에서 가장 밝게 빛난다. 특히 소매에서는 유난히 두꺼운 물감의 질감이 느껴진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면에 크게 등장하지 않고 작고 간략하게 그려졌다. 묘사는 최소한으로 하면서 형태를 빛의 강약으로 드러내고 숨기는 방식을 보면 19세기 인상파의 회화 기법이 연상된다. 렘브란트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빛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이래로 발달하던 키아로스쿠로로 불리는 명암법이 바로크 시대를 연 카라바조의 회화에서 강렬한 조명을 받은 것처럼 표현되었다면, 렘브란트의 회화에서는 어둠 속에서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빛으로 변하면서 화면의 공간감이 매우 풍부해졌다. 이런 빛의 표현은 렘브란트 이후 등장하는 베르메르의 일상적인 풍경 속에 드리워진 온화한 빛과도 상당히 다르다.

렘브란트는 그의 그림처럼 명암이 진하게 교차하는 삶을 살았다. 소도시 레이던(Leiden)에서 나고 자란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피터르 라스트만에게서 그림을 배운 다음 20대 중반에 이미 레이던에서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후에는 주로 유명한 인사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화명이 높아지면서 그림도 비싼 값에 팔렸지만 그의 삶은 그리 평탄치 못했다. 첫 번째 아내 사스키아가 낳은 아이들은 계속 사망했고 겨우 아들 하나를 남기고 아내도 사망해버렸다. 게다가 40대 중반부터는 수입이 줄어들면서 빚에 쪼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고객의 입맛에 맞게 그리지 않고 렘브란트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려는 욕구 때문에 그림 주문이 줄어든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렘브란트는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여러 소품과 거장들의 작품들까지 사들이는 데 너무 많은 재산을 탕진했다고 한다. 이런 재정적인 문제는 렘브란트가 죽을 때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그를 괴롭혔다. 그래서 플랑드르의 루벤스, 스페인의 벨라스케스와 동시대를 살면서 바로크 미술의 황금기를 일군 거장임에도 렘브란트의 자화상에는 쓸쓸함과 고단함이 드러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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