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취한 미술사>
푸젤리 <악몽>
불길한 꿈에 대한 이미지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헨리 푸젤리의 <악몽>이다.
작품을 보면 가로로 놓인 침대 위에 흰옷을 입은 한 여인이 몸을 뒤틀며 얼굴과 팔을 늘어뜨린 채 누워 있다. 그리고 여인의 배 위엔 괴물 같은 존재가 유인원처럼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그림 밖의 관찰자에게 불쾌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괴물의 뒤에 펼쳐진 어두운 장막 사이로는 말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눈동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 눈이 먼 상태로 보인다. 이 그림을 보면 괴기스러우면서도 야릇한 느낌이 든다. 즉 기묘한 양면감정이 든다는 말이다.
<악몽>에는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그림 뒷면에 한 젊은 여인의 미완성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악몽>에 등장하는 여인과 뒷면에 그려진 초상화의 주인공은 안나 란돌트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스위스 관상가 요한 카스파 라바터의 조카딸로, 푸젤리가 열렬히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가 두 사람의 결혼에 반대하면서 푸젤리는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그림에 대해 푸젤리의 실패한 사랑 이야기가 우의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런 시각에서 <악몽>을 보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악몽을 꾸고 있는 여성 위에 앉아 있는 괴물 같은 존재는 바로 푸젤리의 모습이다. 그 괴물은 질투의 시선으로 잠든 여인을 정복하고 소유하려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을 그림 속에서 해소시키고 있는 셈이다.
특히 말 머리는 성적인 의미의 상징으로 풀이된다. 둥글게 튀어나온 눈과 길쭉한 말 머리의 형태를 보면 발기된 남자의 성기가 연상된다. 게다가 눈이 먼 말은 맹목적인 성욕을 은유하는 것 같다. 그래서 괴물에 정복당한 여인의 자세는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이면서도 한편으론 성적인 흥분 상태에 빠진 모습이기도 하다. 즉 공포와 무의식적인 성욕의 분출이 교차하고 있다.
이렇게 양면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도발적인 그림이 1782년 런던 로열 아카데미에 전시되자 관객들은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고, 푸젤리는 꿈과 악몽을 그리는 화가로서 일약 런던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악몽>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면서 푸젤리는 4개의 비슷한 그림들을 제작하게 되었다. 그중에서 1790~91년에 제작한 두 번째 <악몽> 역시 유명한 작품이다. 이 <악몽> 연작은 판화로도 제작되었는데, 그중 판화 한 점이 100여년 후에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서재에도 걸려 있었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꿈이 무의식에 억눌려 있던 욕망의 표출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흥미롭게도 푸젤리의 <악몽>이 암시하는 것들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또한 프로이트의 제자 앨프리드 존스는 1931년 자신의 책을 출판하면서 푸젤리의 <악몽>을 권두 삽화로 이용했다.
푸젤리는 스위스 취리히 출신으로 젊은 시절 개신교 목사로 일했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간 푸젤리는 25세경부터 화가로 전향하여 생애 대부분을 영국에서 활동했다. 그는 초기에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고전 조각에 대해 공부하며 실력을 다졌다. 200점이 넘는 회화작품과 약 800점의 스케치 및 디자인을 했는데, 주로 환상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주제로 과장되고 뒤틀린 자세의 인물들을 그렸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런 경향은 <악몽> 이후에 그가 관심을 가졌던 밀턴과 셰익스피어 작품의 삽화들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푸젤리는 매우 양면적인 성향을 지닌 인물이었던 것 같다. 폭력적이고 모순된 행동으로 주변인들과 불화를 일으켜 자신의 평판을 떨어뜨렸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외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수준 높은 미술비평을 할 정도로 지식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