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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10. 2017

06. 어차피 투표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지적성숙학교>


소비사회란 무엇인가?: 쇼핑과 투표의 근본적 차이

: 시라이 사토시(정치학자)



어차피 투표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회 전반이 풍요로워지면서 자신들의 생활을 정치의 힘으로 어떻게든 개선했으면 하는 생각이 약화되어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이는 언뜻 보면 설득력이 있지만, 저성장 사회로 접어든 지금의 현실을 보면 투표율은 오르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평론가들은 “세상이 각박해져도 투표율이 계속 저하하는 것은 정치가나 정당이 무력하고 부패해서 유권자들이 어디에 투표하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다시 설명을 달고 있다.

“어차피 투표를 하러 가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까 안 간다”라는 행동양식은 소비사회로 보면 옳다. ‘투표하는 행위는 무엇인가, 투표 행위는 쇼핑과 같다’라고 파악할 수도 있다.


쇼핑과 투표라는 정치적 행위의 근본적 차이

이 둘은 근본적 차이는 선택가능성이다. 쇼핑하러 갔을 경우 우리는 마음껏 고를 수가 있다. 상점에 마음에 다는 물건이 없으면 다른 상점으로, 그 상점에도 마음에 다는 물건이 없으면 또 다른 상점으로 돌아다녀 보고,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사고 집으로 돌아오면 된다. 한마디로 자유다. 

그러나 정치는 전혀 다르다. 우리 중 많은 수가 선거에서 기권하여 투표율이 내려가도 누군가는 반드시 당선되고 당선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정권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정권이 어리석은 정책을 추진했을 경우, 그 악영향은 투표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미친다. 정치를 싫어하거나 정치에 대해 무관심할 수는 있지만, 그 누구도 정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정치의 궁극적 결과는 전쟁인데, 전쟁이 일어날 경우 전쟁의 참혹함은 투표자와 기권자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기대할 만한 후보가 없으니까 투표하러 안 간다.”

이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분명히 알겠는가. 정치권력을 맡길 상대를 선출하는 행위는 쇼핑하러 외출하는 행위와는 전혀 다르다. 적극적으로 뽑고 싶은 후보자가 있든 없든, 선출된 권력은 실제로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투표라는 정치적 행위에 선택가능성은 없다. 꼭 이 사람이 당선됐으면 좋겠다는 후보자가 없더라도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그게 없다면 ‘가장 해가 적어 보이는’ 후보라도 선출해야 한다. 정치는 쇼핑과는 달리 판매자들이 탐스러운 상품을 적극적으로 골라서 진열하지 않는다.


‘자업자득’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투표하러 갑시다’라든가 ‘정치에 관심을 가집시다’와 같은 호소를 하는 사람의 동기가 선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전혀 심하지 않지만, 이런 호소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투표하러 와주지 않겠습니까?’, ‘정치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래요?’와 같은 기조 위에 서 있다면 오히려 유해할 수 있다. 그런 호소는 ‘꼭 와주세요’라는 상인의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선거 때 투표하러 가는 것으로 쇼핑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착각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게 된다. 

오늘날 정치가 전반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여 모든 사람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선거 행위를 쇼핑으로 생각하는 소비사회적 합리성에 기초하여 행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교육도 상품이 되어 버렸다.

소비사회가 고도화함에 따라서 교육이 상품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커졌다.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어떤 행위인가? 대부분의 경우는 수업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교육서비스를 상품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수업료라는 화폐를 지불하고 그 대신 기능이나 자격, 졸업증서라는 ‘유용한 것(상품의 효용)’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데, 이렇게 생각하면 교육상품은 다른 여러 가지 상품과 전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교육이 철두철미한 상품이라고 간주된 순간 교육은 불가능해진다. 교육이 상품이라면 학생은 손님이 되는데, ‘손님은 신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장사의 철칙이므로 신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완전히 소비자화한 학생에게 공통되는 행동양식으로 도를 넘는 불성실한 수업태도를 들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엄하게 질책하는 것이 정론이겠지만, 학생이 신이라고 한다면 수강자가 졸거나 자거나 잡담을 해도 그건 수강자의 자유이며, 오히려 그렇게 하고 싶도록 만든 교사를 무능한 판매자라고 매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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