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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16. 2017

10. 평생을 함께할 운명의 뮤즈를 만나다.

<잠에 취한 미술사>


보나르 <침대 위에서 조는 여인>

그림에서 관능성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화가가 사랑한 여성이 모델로 등장할 때인 듯하다. 피에르 보나르의 초기 누드화인 <침대 위에서 조는 여인>에는 그의 모델이자 평생의 동반자였던 마르트가 그려져 있다.

피에르 보나르, <침대 위에서 조는 여인>, 1899


보나르는 1893년경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르트를 만났다고 한다. 신경쇠약을 앓던 그녀는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진 못했지만 보나르에게는 평생토록 영감을 선사하는 뮤즈였다. 보나르는 30여 년 이상 마르트를 모델로 수많은 걸작들을 탄생시켰고, 1925년에 비로소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침대 위에서 조는 여인>은 관능적인 나신이 빛과 어둠의 강한 대조를 통해 매혹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여인은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듯이 누워 있다. 오른쪽 다리를 바닥에 내려놓은 것으로 보아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생각했다가 다시 잠에 빠져버린 듯하다. 두 다리를 완전히 벌리고 있음에도 왼발은 오른쪽 허벅다리에 걸려 있고, 왼팔 역시 젖가슴 위를 수줍게 가리고 있다. 표정을 알 수 없는 어두운 얼굴과 침대 위에 퍼져 있는 암갈색 머리카락도 야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더구나 잠자는 여인의 허벅지와 복사뼈 위로 떠다니는 듯한 푸른색 연기 같은 형태는 기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여인이 누워 있는 침대 위에는 파도 같은 선들이 퍼져 있는데, 이는 램프의 불빛 아래서 흐트러진 이불과 수건 등이 만들어낸 그림자들이다. 이런 어지러운 형태들은 자연스럽게 격렬한 육체의 흔적을 연상시킨다. 이 그림은 우리를 음침한 성관계의 목격자로 만든다. 그러면서도 빛과 어둠에 싸인 육체가 시간을 초월하듯 잠 속에 침잠한 상태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술사에서 보나르는 주로 나비파와 앵티미즘을 대표하는 화가로 소개된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보나르는 국방부 관리였던 아버지의 희망대로 법률을 공부했고, 1890년엔 변호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1887년에 보나르는 줄리앙 아카데미에 다니며 화가의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모리스 드니, 폴 세뤼지에, 에두아르 뷔야르, 펠릭스 발로통 등 평생 함께할 동료들을 만났다. 1888년에 브르타뉴에서 고갱의 지도를 받고 돌아온 세뤼지에는 보나르와 동료들에게 한 점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단순한 형태와 강렬한 색조로 이루어진 그림은 이들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를 계기로 나비파가 결성되었는데, 나비(Nabis)는 히브리어로 ‘선지자’라는 의미다. 새로운 예술을 예감한 그들에게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1890년대의 보나르에게 영향을 준 것은 나비파만이 아니다. 일본의 목판화 우키요에의 영향도 매우 컸다. 이런 일본화의 영향은 병풍이나 족자처럼 세로로 긴 형태의 연작 그림들에서 두드러진다. 189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보나르는 가정적인 실내 풍경과 정물 등을 많이 그렸는데, 이와 같은 회화적 경향을 일명 앵티미즘이라고 한다. 보나르는 친구 뷔야르와 더불어 앵티미즘 회화를 주도했다. <침대 위에서 조는 여인>은 보나르가 앵티미즘에 들어선 시기에 그려진 그림이다. 

보나르는 차츰 온화하고 장식적인 색채화가로서 유명해졌다. 그는 더 알맞은 색채를 화면에 칠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그림을 가필했다고 한다. 언젠가 보나르는 뤽상부르 미술관에서 경비원이 없는 틈을 타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붓과 튜브 물감으로 벽에 걸린 자신의 그림을 급히 고치고 이내 사라졌을 정도였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마지막 작품의 색채를 바꾸기 위해 고민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의 제작 연대는 모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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