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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16. 2017

09. 슬픔을 머금고 있는 여인들의 초상화

<잠에 취한 미술사>


모딜리아니 <팔을 벌리고 잠자는 누드> 

이탈리아 리보르노 출신의 모딜리아니는 1917년 12월 파리의 베르트 바일 갤러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나 전시회는 개막 후 몇 시간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파리의 경찰국장이 모딜리아니의 전시작품들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일명 <붉은 누드>로 불리는 작품 <팔을 벌리고 잠자는 누드>가 너무 충격적이고 외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모딜리아니는 주로 가늘고 기다랗게 과장된 모습의 인물화로 유명하다. 그런 그림들은 유난히 서정적이고 슬픔을 머금고 있어서 36세의 나이로 요절한 비운의 화가였던 모딜리아니의 삶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 나체화는 그런 작품들에 비해 여성의 몸을 매우 육감적이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하였다. 잠에 빠진 어두운 두 눈, 미소를 지은 듯한 가냘픈 입술, 홍조를 띤 볼 그리고 볼륨감 있는 몸매를 과시라도 하듯이 양팔을 벌린 채 누워 있는 여인의 자세는 관능미를 더하고 있다. 자신의 매력과 욕망을 자연스럽게 발산하고 있는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잠들어 있는 듯하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팔을 벌리고 잠자는 누드>, 1917



모딜리아니의 이 누드화는 미술사 속에 등장했던 이전의 누드화들에서 영향을 받았다. 우선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점으로 치면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1863)와 비교될 만하다. 인상파를 탄생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마네는 평범한 파리의 매춘부를 그린 <올랭피아>를 1865년 파리의 《살롱전》에 출품하였는데, 관객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듯한 누드모델의 시선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혹평이 쏟아졌다.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


주로 신화와 문학의 우의적인 장면을 배경으로 한 여성 누드화에만 익숙해 있던 당시의 관객들에게 마네가 내놓은 현실의 매춘부라는 이미지는 상당한 파격이었다. 마네의 <올랭피아> 이후 50여 년이 흘렀고 전위적인 현대미술들이 등장하는 20세기가 되었지만, 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모딜리아니의 누드화를 문제 삼을 정도로 여전히 보수적이었다. 게다가 모딜리아니는 손으로 음부를 가리고 있는 <올랭피아>보다도 훨씬 더 자유로운 자세를 취한 일상의 여성을 그렸다.      

마네 이전엔 스페인 화가 고야가 누드화로 수난을 겪었다. 고야가 1800년에 그린 <옷을 벗은 마하>도 일찌감치 신화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현실의 여성상을 강조했다.

프란시스코 고야, <옷을 벗은 마하>, 1800년경


당시 에스파냐에서는 여성의 정면을 그린 누드화가 드물었다. 그래서 벌거벗은 채 도전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는 여성을 등신대 크기로 그려서 현실감을 느끼게 만든 인물화가 특별해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그림의 주문자는 권력의 실세인 재상 마누엘 고도이였는데, 그가 몰락한 뒤에 고야는 <옷을 벗은 마하> 때문에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모딜리아니는 <옷을 벗은 마하>의 구도를 여러 작품에 차용했다. 비스듬히 누운 여인이 두 손으로 머리 뒤를 받치고 있는 자세는 모딜리아니의 <팔을 벌리고 잠자는 누드>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델을 중심으로 짜임새 있는 구도와 전통적인 고급예술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고야의 회화와 달리 모딜리아니의 회화는 형식적인 구성과 배경 설정 면에서 상당히 분방하다. 그래서 그가 그린 잠자는 여인의 누드화는 현대적이면서도 야생적인 에너지로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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