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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05. 2016

02. 문제를 내버려둬야 하는 이유

<나는 왜 똑같은 생각만 할까>

우승 확률을 예측하는 오즈메이커들에 따르면 그의 우승 배당은 300배였다. 그만큼 그의 우승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러나 브리티시 오픈 개막 2주 전에 간신히 출전권을 따낸 신인 골퍼 벤 커티스는 본선에 진출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그가 주목받지 못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2003년 브리티시 오픈에 출전했을 당시 벤 커티스는 메이저 골프 대회에서 우승했던 경험은커녕 25위 안에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 자신도 배당률로 표현된 평가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경험을 쌓기 위해 대회에 참가했을 뿐이며, 까다롭기로 유명한 코스에서 훌륭한 선수들과의 시합을 즐기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오하이오 주의 촌구석에서 올라와 과분한 무대에 선 기쁨을 솔직하게 드러낸 그의 모습에 팬들과 비평가들은 같이 기뻐해 주었다. 그러나 커티스가 72번 홀에서 8피트 퍼팅을 성공시켜 브리티시 오픈 우승컵인 클라레 저그를 들어 올리자 그들의 기쁨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신인이 메이저 대회 첫 출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1913년 US 오픈 이후 무려 90년 만의 일이었다.
    

2012 텍사스 오픈 우승자 벤 커티스(Ben Curtis)

 
대회가 벌어진 그 주말에 커티스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무명 선수가 골프 황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고, 그의 말마따나 “동화 같은 삶”이 눈앞에 펼쳐졌다. 개인적으로 축하를 전하고 싶다는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백악관 방문을 위해 일정을 조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메이저 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포상으로, 일정 기간 예선을 거치지 않고 원하는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골든 티켓’도 손에 쥐었다.
     
2011년은 커티스의 우승자 출전권이 만료되는 해였다. 커티스는 5년 전 PGA 투어에서 우승한 것을 끝으로 줄곧 내리막을 걷는 중이었고, 프로 골퍼 자격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형편이었다.
     
2012년 시즌을 앞두고 커티스는 투어 출전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런 절박함이 그를 옭아맸다. “코스로 걸어 들어갈 때마다 혼잣말했습니다. ‘자, 어떻게 하면 참담한 실패를 맛보지 않을 수 있을까?’ ”실수하지 않는 것이 그의 유일한 목표였다. “필드에 서면 보기나 더블보기를 범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결과는 어김없이 보기나 더블보기였죠.”
   
실수를 피하려는 노력은 더 많은 실수로 이어졌다.
     
“제가 했던 행동, 제가 생각했던 방식이 제게 더 많은 압력을 가했습니다. 불필요한 압력이 더 심해질 뿐이었어요.”
   
게다가 이전 홀에서 범한 실수를 다음 홀에 가서도 떨쳐 버리지 못했다. “두 홀 앞에서의 실수를 계속 머릿속에서 되뇌었습니다. 다음 홀에 가서도 앞서 파 퍼팅을 놓쳤던 것만 계속 생각했어요. 가끔 좋은 기록을 낼 기회가 와도 어차피 실수하고 말 거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문제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커티스에게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그러다가 다행히도 바닥을 쳤다.
     
어느 대회에서도 결승전에 진출하거나 우승하지 못했던 탓에, 2011년 시즌이 끝나자 그의 PGA 투어 출전권은 조건부로 변경되었다. 2012년에 골프 토너먼트에 참가하려면 스폰서들로부터 초청장을 받아야만 했다. 같은 처지의 골퍼 50~100명 가운데 출전권을 받는 것은 8명뿐이었다. 커티스는 몇 주 동안이나 전화기 옆을 떠나지 못하고 대회 주최 측의 연락을 기다렸다.
     
운 좋게도 커티스는 2012년 시즌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애타게 전화를 기다리던 그 몇 주 사이에 내면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 그를 짓눌렀던 압력이 돌연히 사라진 것이다. 애써 지켜야 할 자격이 없어지자 라운드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전처럼 두렵지 않았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다시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2012년 시즌 개막 후 넉 달 뒤, 커티스는 네 번째로 참가한 대회에서 2,000일 이상 이어졌던 무관의 흐름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텍사스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해 전업 프로 선수 자격을 회복한 것이다.
     
“골프란 게 그렇더군요.” 커티스는 말했다.
     
“내버려 두면 그쪽에서 슬쩍 다가와서 깜짝 놀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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