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인간과 함께한 시절>
영생에 관한 문제는 그리스신화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아폴론의 여성 동료이자 새벽의 여신인 에오스(아우로라)는 총명하고 아름다운 트로이의 왕자 티토노스(Tithonos)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에오스는 티토노스에게 영생의 삶을 내려 달라고 제우스에게 부탁했지만 안타깝게도 영원한 젊음을 약속 받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 후로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산에서의 하루는 인간 세상에서의 천 년과 같다’고, 티토노스는 금세 늙어간 반면 에오스는 영원히 꽃다운 18세의 모습이었다. 매일 아침 동틀 무렵이면 에오스는 동쪽하늘로 가서 밤의 휘장을 걷어야 하는데 출발하기 전에 침대에 누워 있는 늙고 쇠약한 남편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서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에오스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은 바로 티토노스였다. 한없이 늙어버린 데다가 삶은 꿈처럼 허무했지만 끝내고 싶어도 끝낼 수가 없었다. 티토노스에게 남은 건 이제 치욕감밖에 없었다. 마침내 에오스는 동정심을 발휘해 제우스에게 다시 부탁하여 티토노스를 귀뚜라미로 변하게 했다. 그 이후로 매일 아침 동틀 무렵에 에오스가 휘장을 걷을 때면 풀숲에서 전생의 애인을 부르는 귀뚜라미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고 한다.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Cassandra)는 매우 총명하고 영특한 소녀였는데, 사랑을 명분으로 아폴론으로부터 예언의 능력을 선물 받았다. 예언 능력은 인간이 두 번째로 갖고 싶어 하는 것(두 번째로 갖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미래와 운명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산드라는 예언 능력을 얻은 후 아폴론의 사랑을 거절했다. 아폴론은 이미 준 선물을 도로 회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원 플러스 원으로 카산드라에게 입맞춤을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때부터 카산드라의 비참한 운명이 시작됐다. 우선, 인간은 예언 능력 자체를 가져서는 안 된다. 미래를 알면 삶이 진행되지 못하고 의미와 매력을 잃게 된다. ‘스포일러 조심’이다! 미래를 예지할 수 있으면 재난의 영향이 앞당겨지고 시간이 행복을 희석해버린다. 두 번째, 선지자는 생활 속에서 같은 인간들뿐만 아니라 신들도 시기하고 질투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가 없다. 영화 속에서도 조직폭력배들이 입을 막기 위해 상대를 죽이면서 하는 말이 ‘너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다. 세 번째, 미래와 운명을 안다고 해서 아널드 슈워제네거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 예정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예언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