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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27. 2017

09. 말로 운을 바꿀 수 있을까?

<운을 읽는 변호사>



남을 배려하는 말에는 행운을 부르는 힘이 있습니다. 특히 진심으로 남을 배려하는 말에는 극적으로 운을 바꾸는 힘이 있지요. 저는 그러한 사례를 몇 번이나 경험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은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삼십여 년 전, 오사카에 사는 형제가 부모님이 남겨준 유산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이다가 제게 일을 의뢰해왔습니다. 그 집의 아버지는 슈퍼마켓을 경영하고 있었으며 형은 전무를, 동생은 상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사장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슈퍼마켓 경영은 형이 이어받고 동생은 회사를 떠나 독립해서 다른 슈퍼마켓을 차렸습니다. 유산 상속으로 문제가 된 것은 오사카 시내의 토지 500평이었습니다. 당시 공시 지가로 억대를 넘어서는 유산이라 형도 동생도 서로 ‘내 것’이라며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상담을 하면서 원만한 화해를 권했습니다. 권리는 절반씩 가지고 있으니, 한쪽이 땅을 가지고 싶다면 다른 한쪽에게 해당 토지의 절반에 해당하는 돈을 지급하도록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형도 동생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 상태로 법원 조정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양쪽의 주장은 변함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조정이 중단되고, 심리와 재판으로까지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심리나 재판으로 넘어가면 서로 상대를 공격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는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유산을 상속받는다 해도, 마음속에 커다란 응어리가 남아 평생 형제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재판에서 진 쪽은 물론이고 이긴 쪽조차 상대를 미워하게 되겠지요. 즉, 부모님을 잃은 불운에 형제까지 미워하게 되는 나쁜 운명을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운을 나쁘게 하는 길로 돌진하는 것이지요.

형제가 서로 미워하는 건 돌아가신 부모님에게는 더없는 불효입니다. 당시 저는 변호사로서 상담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기에 좌절감이 컸습니다. 자식을 위해서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분에게 정말 면목이 없었습니다. 저는 참담한 기분으로 당사자인 형제와 재판관과 함께 조정 중단을 결정하는 자리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급작스러운 전개로 유산 분쟁이 해결되었습니다. 그 계기는 동생이 중얼거리듯 내뱉은 말 한마디에 있었습니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형한테 불리한 일 따위는 안 해.” 겨우 이 한마디의 말에 운과 불운을 나누는 아주 작은 이치가 숨어 있었습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형은 동생의 말을 듣고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또 말다툼이 시작되는 건가, 하고 저는 조마조마했습니다. 동생은 형을 노려보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저 땅을 받아도 형한테 불리한 일 같은 건 안 한다고 했어.” “너, 그거 정말이야? 다시 한 번 말해봐.” 저는 흠칫 놀랐습니다. 형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형은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땅을 경쟁 슈퍼마켓에 팔거나 하지 않아.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 동생의 목소리도 아까처럼 날이 서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형과 같이 떨리는 목소리였습니다. 형은 “진짜냐” 하면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윽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동생도 오열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했습니다. 유산 상속을 둘러싼 이 다툼은 욕심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라, 형제간의 불신이 원인이었습니다. 문제의 토지는 형제의 아버지가 만든 슈퍼마켓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장소에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땅에 슈퍼마켓의 2호점을 내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만 돌아가신 것입니다. 회사를 이어받은 형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언젠가는 그 땅에 2호점을 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형의 그런 생각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혼자 독차지하려 한다고만 생각한 것입니다. 게다가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자금도 필요했겠지요. 그래서 동생은 500평의 땅을 매각하려 했고 형은 동생의 진의를 의심했습니다. ‘저 녀석은 나를 미워하고 있어. 그러니까 그 땅을 경쟁 슈퍼마켓에 팔아서 내 사업을 방해하려는 거야. 나는 아버지의 가게를 어떻게든 키워가려고 애쓰는데 저 녀석은 자기만 생각하는 게 분명해.’

형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업을 지키고 싶었기에 강경하게 맞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동생이 뜻밖에 “형한테 불리한 일따위는 안 해” 라고 말하자 동생을 향한 시기와 의심이 한순간에 걷혔습니다. 그러니까 성인인 남자가 소리 높여 울음을 터트린 것이겠지요. 이를 보고 동생도 자신이 오해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형이 그 땅에 집착한 것은 욕심이나 자신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업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그제서야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동생도 오열한 것입니다. 서로의 오해를 푼 형제는 소송을 통한 다툼을 피하고 단번에 화해했습니다.

그 결과 형이 500평의 땅을 이어받는 대신, 토지 가격의 절반에 해당하는 돈을 동생에게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형제 사이는 원만해졌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기뻐할 만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유산 상속 사건에서 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 형제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것은 동생의 말 한마디였습니다.

저처럼 오랜 시간 변호사로 일하면 여러 다툼을 보게 됩니다. 변호사는 다툼이 있기에 존재하는 직업이지만, 사실 다툼이 없는 게 가장 좋습니다. 다퉈서 좋은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다툼은 불운으로 가는 길이자, 불행한 인생으로 들어서는 문입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다툼을 생계 수단으로 삼고 있으니, 변호사라는 직업은 참으로 죄 많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슬픈 것은 유산을 둘러싼 다툼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만으로도 슬픈데, 형제나 친척이 서로 재산을 빼앗으려고 하면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항상 유산 상속 문제가 발생하면 소송하지 않고 화해하도록 설득하는데, 원만하게 잘 해결되지만은 않습니다. 재산에 눈이 어두워져서인지, 아니면 형제끼리의 오랜 불화 탓인지 저의 이야기에 좀처럼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변호사로서 무력감을 느끼지만 ‘남을 배려하는 단 한마디의 말’이 분쟁을 해결하고, 의뢰인의 운까지 바꾸는 경우를 보면서 또 다른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말은 사람의 운을 좌우합니다. 이 형제의 사건은 마음속에서 부터 남을 배려하는 말은 큰 행운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부디 남을 배려하는 말을 소중히 여기세요. 그 한마디가 당신에게 커다란 행운을 불러올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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