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갑질 대한민국

<감정 시대>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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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백화점의 의류 매장에서 어떤 고객이 직원에게 삿대질하더니 급기야 뺨을 때린다. 흐릿한 CCTV 영상이지만 뺨을 감싸 쥔 직원은 변변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뺨을 때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고객의 몸짓은 더 거세진다.

또 다른 백화점 지하주차장 구석에 주차요원으로 보이는 남자 직원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그 앞에 나이 든 여성 고객이 허리에 한 손을 올리고 연신 화가 난 몸짓으로 주차요원을 압박한다. 주차요원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갑질’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갑질’이란 권력을 갖고 상대보다 우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횡포를 일컫는 말이다. SNS나 인터넷에 올라온 CCTV 영상이나 사연 등을 통해 알려지던 ‘갑질’의 전말은 사회 구성원들의 공분을 샀다. 하지만 이런 ‘갑질’은 더 이상 몇몇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특수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기사화되지 않은 일상적인 ‘갑질’을 종종 목격하고 전해 들을 뿐 아니라, ‘갑질’ 속 주인공이 될 때도 있다. 콜센터 직원들에게 폭언과 성희롱은 이미 일상이다. 높게는 재벌부터 평범한 아파트 입주민까지 ‘갑질’의 횡포는 광범위하지만 갑의 지위는 상대적이다. 그래서 매장에서는 을이 되어 설움을 겪었던 사람이 다른 곳에서는 ‘갑질’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갑질’은 내남없이 벌어지는 대한민국의 살풍경이 되었다. 이른바 ‘갑질’ 대한민국이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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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감정은 모멸감이다. 모멸감은 모욕과 경멸이 합쳐진 말로, 앞의 사례처럼 적나라하고 공격적인 모욕으로 인해 느껴지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일상 속에서 은근하게 전달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 풍경은 과연 어떨까. 사회학자 김찬호 교수는 이 감정을 연구한 책인 <모멸감>을 펴냈다.

이 책에 따르면 모멸감은 ‘나의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운 감정’으로,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에게 모욕을 일상적으로 주는 사회 못지않게 모멸감을 쉽게 느끼는 마음도 사회문제로 지적되었다는 점이다. 모욕을 당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마음이 파괴당한 결과, 모멸감을 쉽게 느끼게 된 것이다.

모멸감을 느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정신이 파괴되는 것은 모욕 자체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반해 굴종하고 굴복당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이런 마음은 곧잘 공격성과 폭력으로 발현된다. 모멸을 쉽게 느끼는 마음에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게다가 모멸감은 단순히 개인적으로 당하는 일 때문에 느끼는 것만이 아니다.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 격차와 불안한 노동시장 등은 사람들 사이에서 수많은 차별과 구분 짓기를 낳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 임대 아파트와 일반 아파트 사이에 놓인 담, 대학 입학 전형에 따른 서열화 등, 오로지 권력이나 돈으로 다른 사람을 열등하게 만들고 자신을 높이려는 사회 분위기는 상호 존중의 문화를 파괴했다.


이런 모멸감의 최전선에는 감정노동자들이 있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함으로써 고객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제공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는 이제 더 이상 일부 직업군이 아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2010년 한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고용인구 1,600만 명 가운데 1,200만 명이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다. 이는 고용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수다. 이 가운데 감정노동자는 6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그중 42% 정도가 비정규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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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미 씨가 고객에게서 받은 갑질을 증언하는 가운데, 대형 마트의 노조를 이끌고 있는 전수찬 위원장은 한 회사의 고객 대응 지침을 소개했다. ‘최초 응대 시 진정성 있는 사과가 가장 중요함’,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황을 이해하며 고객의 불만을 진정으로 경청함’, ‘처음부터 악성고객 판단은 금물임’ 등 상대방이 막무가내로 나오며 상식 밖의 심한 욕설을 해도 맞대응을 해서는 안 되고 무조건 고분고분 사과를 하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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