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Jul 08. 2016

02. 뱀으로 승화된 한(恨)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은 천경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게다가 갈수록 나빠지는 집안 형편과 남자와의 갈등으로 그녀는 지칠 대로 지쳤다. 그러나 괴로움과 슬픔이 올라올수록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천경자는 자신에게 몰아닥친 잔혹한 운명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한의 무게를 고스란히 화폭에 옮겨놓았다. 고독을 친구 삼고 슬픔을 땔감 삼아 삶의 고통을 그림으로 보상받고자 한 것이다.


삶의 시련이 절정에 달해 극적인 고통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그녀는 불현듯 1949년 서울 동화백화점에서의 전시회를 마치고 광주로 돌아오는 3등 열차에서 본 환상이 떠올랐다. 그것은 햇빛에 꽃 비늘을 반짝거리며 날쌔게 찔레꽃 사이로 사라지는 실뱀 두 마리였다. 그녀는 환상 속 이미지를 스케치하기 위해 광주역 앞에 있는 뱀 집을 찾았다. 그곳에서 똬리를 틀고 꿈틀거리는 비단뱀과 잔뜩 독을 품고서 혀를 날름거리는 독사들을 보며 묘한 생명의 충동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사건과 추억을 되살리며 그녀는 뱀의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러자 마음의 동요가 사라지고,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다음 날 그녀는 백로지를 잘라 스케치북을 만들고, 팔촌 외종질과 함께 뱀 집을 다시 찾았다. 만약 겁이 나서 그리지 못한다면 붓을 놓아버리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뱀 집에 들어서니 생 장작개비 냄새와 닭 고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인은 상자를 열어 손으로 뱀의 목을 잡고 포즈를 취해 주며 뱀을 그리려는 기이한 화가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나 생동감 있는 뱀의 모습을 그리려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풀어줘야 했다.

꿈틀대는 뱀의 움직임을 관찰한 드로잉


그래서 다음 날에는 뱀을 넣을 유리상자를 만들어갔다. 주인은 작대기로 유리상자 안에 수십 마리의 독사와 꽃뱀을 넣어 오동나무 아래 놓아주었다. 뱀들은 투명한 상자 안에서 얽히고설키면서 유연한 몸을 꿈틀거렸다. 그렇게 한 시간쯤 꿈틀대는 뱀을 응시하면 정신이 몰입되어 뱀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뱀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는데, 실제로 관찰한 뱀의 눈은 똥그란 것이 붕어 눈깔처럼 순하게 생겼다. 그러나 진분홍색 바탕에 먹물로 까만 열십자가 그려진 독사의 눈은 살기가 돌았다. 그동안 많은 뱀을 보았지만, 독사의 눈을 정면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으스스한 공포가 오히려 복잡한 상념을 사라지게 하고 마취약처럼 고통을 잊게 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적요감이 엄습해오면, 비로소 자신의 모델들이 탕 신세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뱀 스케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전쟁이 터졌다. 북한군이 침공했다는 소문이 돌며 세상이 어지러웠지만, 그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뱀 집을 찾았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자 독을 품은 독사의 몸뚱이가 꽃처럼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다. 화가 나면 색깔이 엷어지고 부풀어 오르거나 똘똘 뭉쳐 똬리를 틀거나 몸을 꼿꼿이 세우는 뱀의 생태에서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보았다. 그리고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징그럽고 무서운 뱀을 그림으로써 나는 생을 갈구했고, 그 속엔 저항과 뜨거운 열기가 공존하는 저력이 심리의 저변에 깔려 있다.


뱀과 여인은 태초부터 악연이었다. 성경에서 뱀은 하와를 유혹해 금단의 열매를 따먹게 하여 신의 분노를 샀다. 그 일로 뱀은 배로 기어 다니며 흙을 먹고 살아야 하는 저주를 받았고,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었다.

천경자도 뱀과의 악연이 많다. 고향 뒷산에서 친구가 독사에 물려 죽은 이후 그녀에게 뱀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동경 유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흰 나리꽃 속에서 빨간 실뱀이 나와 식구들을 놀라게 하고 사라지기를 사흘이나 계속했다. 뱀 때문에 불안해서 못살겠다는 생각에 그녀는 팥례와 함께 실뱀을 뚜껑 없는 방공호로 몰아넣고는 돌멩이를 던져 죽였다. 그리고 나서 쭉 뻗은 뱀을 부지깽이에 걸고 뒷산에 올라 불을 질러버렸다.

천경자의 기억 속에서 뱀은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극적인 위기 상황에서 뱀과의 만남은 묘한 충동을 자극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를 자기편으로 삼아 스스로를 지키려는 보호본능 같은 것이었다. 뼈대가 없는 뱀은 부드럽고 힘이 없지만 독을 통해 자신을 보호한다. 천경자도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뱀의 지혜와 독이 필요했던 것이다.

무등산의 철쭉이 한창일 무렵, 천경자는 시청 앞에서 혼자 사는 한 부인으로부터 “집을 비우게 되었으니 한 달간 사용해도 좋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녀는 곧장 학교를 그만두고 뱀 집에서 스케치한 뱀들을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다.

천경자는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그림으로 보상받으려는 듯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한번은 연극연출가 이원경이 광주에 내려왔을 때 천경자 집을 방문했다. 그를 보자마자 천경자는 “아이고 선생님, 우리 옥희가 죽었어요” 하고 울부짖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울면서 뱀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오래간만에 만난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울면서 그림만 그리는 모습을 어이없어 하며 지켜보았고, <생태>라는 제목을 지어주었다.

스케치한 뱀들을 화폭에 옮기고 나서 도대체 몇 마리나 그렸는지 세어보는데, 온통 뒤엉켜 있어서 세기가 어려웠다. 뱀 대가리에 성냥개비를 놓아가며 세어보니 정확히 33마리였다. 순간 자신에게 고통을 남기고 떠난 두 번째 남자가 35세 뱀띠라는 사실이 떠올라 화면 상단에 꽃뱀 두 마리를 추가로 그려 넣었다. 중앙에 위협적인 혀를 날름거리며 고개를 들고 있는 한 마리의 독사를 중심으로 수십 마리의 뱀들이 뒤틀린 창자처럼 뒤엉켜 있는 작품 <생태>2는 그렇게 탄생되었다.

<생태>, 1951, 종이에 채색, 51.5x87cm


뱀 그림이 완성되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음식점 마담이 주변 사람을 초대해 축하연을 열어주었다. 그 자리에는 김남중을 비롯해 소설가 이석봉, 흥행사 이여송, 동방극장 사장 전기섭, 극장 전무 최흥렬 등이 참가하였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분위기가 무르익자 천경자는 일어서서 수궁가를 구슬프게 불러댔다. 애절한 곡조가 꿈틀거리는 뱀처럼 꼬부랑거리며 아슬아슬하게 넘어가자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한국전쟁 중에 재직하던 학교마저 그만둔 천경자는 그 무렵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더군다나 <생태> 같이 징그럽고 괴기한 뱀 그림이 팔릴 리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평소 알고 지내던 금융조합의 높은 사람을 찾아가 울면서 “열흘 만이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그랬더니 그는 새파란 돈뭉치 2만환을 꺼내주면서 “아무 그림이나 한 점 보내달라”고 했다. 이에 감격한 그녀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이후에도 여수, 진도, 목포, 영광, 함평 등지로 아는 군수나 서장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사달라고 사정했고, 그림이 팔리고 나면 서너 달은 겨우 버틸 수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벌어 자신의 오두막집이라도 마련하고 싶었으나 당시 상황으로는 꿈같은 일이었다.

동생의 죽음 이후 천경자는 온통 죽음에 대한 생각뿐이었고, 자신의 죽은 모습을 그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광주도립병원에 가서 죽은 사람의 하얀 뼈를 어렵게 구해왔고, 인골을 그리는 동안 죽은 여동생의 극락왕생을 염원했다.

뱀 그림에 이어 그린 <내가 죽은 뒤>3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골몰해 있던 당시의 관심사를 반영한 작품이다. 여기에 그려진 상사화相思花는 꽃잎이 지고 난 뒤 서리가 내릴 때쯤 싹이 돋아나 겨울을 보낸다. 싹이 무성히 자라는 6월이면 갑자기 시들었다가 서늘한 바람이 부는 9~10월이면 흔적도 없는 곳에서 꽃대가 솟아오른다. 인도 사람들은 상사화를 천상계의 꽃 만주사화曼珠沙華라 부르고, 지상의 마지막 잎까지 말라 없어진 곳에서 화려한 꽃을 피운다 하여 피안화彼岸花라고도 한다. 꽃이 피긴 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잎과 꽃이 한평생 만나질 못한 채 언제나 그리워하는 상사화에 천경자는 자신의 운명적 슬픔을 투영했다.

<내가 죽은 뒤>, 1952, 종이에 채색, 43x54cm


이 그림에서 하얀 인골은 죽음, 상사화는 포기할 수 없는 꿈을 상징한다. 그리고 공중을 나는 한 마리 나비는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자신의 분신 같은 존재이다. 그녀는 그림 속에서 나비가 되어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스스로를 관조하고 있다. 평소 천경자는 자신의 복합적 감정을 그림에 투영하였고, 이것은 현실의 갈등과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심리적 고통이 커질수록 그림에 몰두한 것은 이처럼 관조자가 되면 자신의 고통스런 감정이 치유되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02. 당신도 혹시 발달장애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