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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08. 2016

00. 나는 여행을 했고 인생을 배웠다.

<여행의 이유>

                                               

ⓒ김경우 호주 빅토리아주


여행이라는 장애물 경기

먼저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자. 많은 사람이 ‘여행이란 무엇인가’ 하고 내게 묻는다. 그 질문에 대해, 십오 년 동안 여행을 해나가며 얻은 대답은 단 하나다. ‘여행은 힘들고 피곤하다’는 것.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피곤하고(준비단계), 떠나는 중에도 피곤하며(여행 중), 돌아오고 나서도 피곤하다(피로와 후유증). 단언컨대, 피곤하지 않은 여행은 없다. 벼룩이 있는 침대, 속을 뒤집어놓는 거리의 역한 냄새, 불친절한 웨이트리스,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노골적인 차별, 배반과 거짓말 그리고 하루하루 사라져가는 물건들…… 이런 것들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여행이다.

몇 해 전, 이탈리아 시칠리아 여행에서의 일이다. 이탈리아 하면 G7에 속하는 선진국이다. 하지만 시칠리아의 철도와 버스 운행시스템 등은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다. 연착은 예사고 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파업은 왜 그렇게 잦은지. 예약한 티켓을 찾으러 가면 매표소 문은 굳게 잠겨 있기 일쑤다. 항의를 하면 어깨를 한 번 들썩이는 ‘이탈리안 제스처’를 보이는 것으로 끝난다. ‘이봐 여행자, 나도 어쩔 수가 없다구.’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그의 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에서 이탈리아 여행을 두고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이건 여행이 아니라 마치 장애물 경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김경우 이탈리아 토스카나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대체 왜일까. 불편함과 당혹스러움과 비참함이 이어지는 그 사이사이에 벼락처럼 내리는 행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눈물이 나올 것처럼 푸른 바다, 그 앞에서 느끼는 해방감. 혀를 마비시킬 것처럼 맛있는 음식, 그것을 먹으며 느끼는 황홀감. 이방인을 향해 건네는 시원한 물 한 잔, 그 물을 마시며 느끼는 감사함. 여행이 주는 이런 매혹에 빠지면 좀처럼 여행이라는 중독에서 헤어나오기가 힘들다.

지금 돌이켜보니, 여행이라고 부를 만한 여행을 처음 떠난 것은 대학 4학년 때, 스물다섯 살의 여름 어느 날 몽골로 떠난 여행이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몽골이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뉘어 있다는 것도 몰랐고 내몽골이 중국령이라는 것도 몰랐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친구가 물었다.

“여행 가지 않을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가자.”

“그런데 우리가 왜 여행을 떠나야 하지?”

내가 되물었다. 친구는 골똘하게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아마, 우리가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면 오랫동안 여행을 떠나기가 어려울 거야. 정신없이 바빠질 테니까 말이야. 그때면 아마 지금 여행을 떠나지 못한 걸 엄청나게 후회할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몰라. 그럼 어디가 좋을까?”

친구는 미리 준비를 해두었다는 듯 주저 없이 대답했다.

“사막으로 가는 거야.”

“왜 하필 사막이어야 하는 거지?”

나는 나의 첫 해외여행이 왜 사막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막 말고도 어딘가 근사한 곳이 있지 않을까?”

친구가 대답했다.

“어느 책에서 그러더군. 사막은 오래된 여행자들이 찾아간다고 말이야. 우리가 사막에서 돌아오면 우린 꽤 괜찮은 여행자가 되어 있을 거야. 누군가 우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어디냐고 물었을 때 우린 그에게 이렇게 답하는 거야. 사막이었어요. 거대한 모래바람을 보았죠. 밥을 먹을 때마다 모래가 한 움큼씩 씹혔어요. 가장 지독한 경험이었죠. 그는 우리를 약간은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볼지도 몰라. 어때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아?”

“물론 멋진 일이지만, 솔직히 난 밥과 함께 모래를 한 움큼씩 씹어 먹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결국 우리는 사막으로 떠나기로 했고 며칠 뒤 비행기에 올라 있었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채우며 ‘이 쇳덩이가 정말로 하늘을 날아오른단 말이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쇳덩이는 ‘정말로’ 날아올랐다. 선체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화살이 날아가듯 휙-하고 튕겨나갔다.

아아, 그때. 난생 처음 타본 비행기가 지상을 벗어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중력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그 느낌. 약 5도 정도로 선체를 기울인 비행기는 공항을 한 바퀴 천천히 선회했다. 나와 친구는 서로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우린 날아가고 있어.’ 분명, 평생에 딱 한 번, 그 순간만 지을 수 있는 흐뭇한 미소였다.

여행에 중독되고, 여행작가가 된 계기는, 그 느낌 때문이었다. ‘드디어 이곳을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 비행기가 텅 빈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순간, 어떤 위안 같은 것이 가슴 속에 가득 찬다. 그것은 분명 기차나 버스, 자동차가 출발할 때와는 다른 기분이다. 세금과 할부금과 가족과 보고서, 가뭄과 홍수와 지진과 학살,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모든 시시하고 빤한 것들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 바로 그 느낌.

그동안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해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인구가 4만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도시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배낭여행자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보냈다. 내가 ‘당신은 왜 여행을 떠났는가’ 라고 묻자 그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따분해진 거였지. 지구는 시속 1,669킬로미터로 돌아가고 있지만, 나는 전혀 짜릿하지도 않고 어지럽지도 않았어. 그래서 길을 떠나기로 한 거야.” “당신은 왜, 어떻게 여행을 시작했는가, 라는 물음은 어쩌면, 쥐랑 파충류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혹은 12세기 암스테르담의 어느 평화로운 오후에 대해 1,500자 이내로 기술하시오라는 물음처럼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여행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며 사적인 행위예요. 내가 어디로 가든,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상관하기 싫어서 상관받기 싫어서 우리는 여행을 떠나니까요.”

당신은 왜 여행을 떠나는가. 아마도 사람마다 제각각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길은 당신 앞에서 시작하며 그 모든 길은 오직 당신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당신의 새로운 주소다.



여행작가 l 최갑수

생의 탐색가, 시간의 염탐자, 길의 몽상가. 1997년 계간 〈문학동네〉에 시 〈밀물여인숙〉으로 등단, 시집 《단 한 번의 사랑》을 펴냈다. 일간지와 잡지사에서 여행 담당 기자를 하며 ‘직업’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은 여행자로 살며 시를 쓰고 글을 짓고 사진을 찍는다. 에세이집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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