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행복이 꼭 소소해야 해?”

<2018 트렌드 노트>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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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라는 의미의 팽창은 YOLO가 시사하는 가장 큰 가치관의 변화다. 오늘이 중요해지면서 덩달아 중요해진 것이 있으니 바로 ‘휴식’이다. 안전한 미래를 위한 준비이자 투자로 여겨지던 노동보다, 지금의 나를 위한 쉼과 휴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때문에 집에서 시켜먹는 치맥이나 공원 산책이 주는 ‘재충전’의 기능만으로는 지금 사람들이 바라는 ‘휴식’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 휴식시간은 더 길어져야 하고, 더 강렬해져야 한다.

강렬한 휴식의 장소로 각광받고 있는 곳도 바로 ‘호텔’이다. ‘휴식’의 장소 연관어를 보면 ‘집’보다 ‘호텔’과 ‘카페’의 비중이 더 높다. 주말에 빈둥거리며 IPTV로〈프로듀스 101〉을 정주행하던 장소가 내 집 소파에서 호텔 침대로 옮겨가고 있다.


‘휴식’의 장소 연관어

1.jpg?type=w1200 출처 | SOCIALmetrics™ 2013.01.01~2017.08.31 (Blog)


“월급은 개미똥만큼이지만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 그나마 살맛이 나겠지? 룸 밖으로 나가기 귀찮으니 룸서비스나 시켜야지… #휴식 #셀카 #셀스타그램 #호텔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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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월급은 개미똥만큼밖에 못 받더라도 하고 싶은 것은 쉽게 타협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오늘의 우리 모습. 하고 싶은 것을 미래로 미루지 않고 바로 지금 실행하는 것이 휴식을 대하는 오늘날의 태도다.

2017년 상반기 벤츠의 한국시장 판매량은 전 세계 5위로, 이탈리아(6위), 일본(7위), 프랑스(8위)보다 높다. 유럽의 선진국보다, 일본보다 벤츠가 많이 팔리는 나라. 마이너스 통장을 뚫어 벤츠를 사면서 말한다.

“어차피 집은 못 살 거 알아요. 30년 갚아서 서울에 25평 아파트 사는 건 하나도 안 폼나는데 3년 뒤에 되팔더라도 가장 화려한 30대에 벤츠 모는 건 폼나거든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저는 오늘 폼나게 살 거예요. 제 아버지인 우리은행에 오늘 돈 빌리러 갑니다.”

소소한 일상으로 대변되던 ‘커피 한 잔’의 지속력은 고작해야 오후 근무시간까지뿐이다. 커피 한 잔이 주는 일상의 여유로 근근이 버티며 야근을 해보지만, 수많은 커피를 들이마시며 반복한 노동의 결과가 그다지 값지지 않다. 벅찬 노동의 결과가 과거 경제부흥기처럼 아파트 한 채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커피 한 잔으로 노동의욕을 고취하는 대신 우리가 택하는 것은 ‘호텔에서의 완벽하게 화려한 하루’다. 현실적인 청년 묘사로 화제를 모았던 KBS 드라마 〈쌈마이웨이〉 속 안재홍의 대사처럼 “왜 행복이 꼭 소소해야 해?”라고 스스로에게 되묻기 시작한 것이다.

소소한 행복을 아무리 쌓는다고 커다란 행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노동을 위한 재충전으로 여겨지던 휴식을 멈추고 나를 위한 휴식, 휴식을 위한 휴식을 화려하게 즐기기로 작정한다. 소소한 일상에 대한 반란처럼 느껴지는 ‘화려한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공간, 휴가철 여행지로 아껴두지 않고 지금 바로 달려가 누리는 ‘화려한 일상’의 호텔이 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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