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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11. 2016

00. 기생충이 두려운 당신에게

<기생충 콘서트>

자신의 몸에서 기생충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분들이 뜻밖에 많다. 기생충 망상증 단계까지 가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생충이 있을까 봐 불안해하는 분들이다. 그중 몇 명을 만나 보자.



1) 설사를 하는 A씨

Q : 어제저녁, 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좀 덜 익은 걸 먹었어요. 그런데 아침부터 설사가 나는 겁니다. 기생충 때문인가요?

: 돼지고기에 있는 기생충은 우리나라에서 더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리고 설사 수입 고기에 기생충이 있었다 해도 그게 증상을 일으키기까진 최소 한 달은 걸립니다. 다음 날 아침 바로 설사가 난다면, 그건 돼지고기가 본인에게 잘 맞지 않거나, 식중독 등을 생각할 수 있겠지요.


2) 방귀가 잦은 B씨

Q : 요즘 방귀가 잦습니다. 혹시 기생충이 있는 건 아닐까요?

A : 기생충은 방귀를 싫어합니다. 사람의 방귀가 기생충한테는 태풍인데, 설마 기생충이 방귀를 일으키겠어요? 방귀의 원인은 세균의 발효입니다. 아주 정상적인 것이지요.

Q : 그래도 방귀가 너무 잦아서요. 구충제라도 먹어야 할까요?

A : 구충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고구마처럼 방귀를 유발하는 음식을 덜 섭취하시길 권합니다.


3) 귀를 긁는 C씨

Q : 귀가 가려워요. 귓밥도 나오고. 혹시 기생충 아닌가요?

A : 기분 탓입니다. 아니면 누군가 욕을 해서 귀가 가려운 건지도 모르겠네요. 인간관계를 잘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4) 눈에 기생충이 있다는 D씨

Q : 눈을 뒤집어 까 봤더니 기생충 같은 게 보여요.

A : 그건 기생충이 아니라 혈관입니다. 괜히 눈 까지 마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 기생충이 있다고 생각하고 뒤지기 시작하면, 세상이 다 기생충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5) 항문이 가려운 E씨

Q : 아무래도 나한테 기생충이 있나 봐요. 수시로 항문이 가려워요.

A : 배변 후 항문을 잘 닦고, 항문을 씻은 후 잘 말리세요. 그럼 좋아집니다.

Q : 그래도 책 찾아보니까 요충 같은데요.

A : 자신이 항문 관리를 잘못한 걸 애꿎은 요충에게 덮어씌우면 안 됩니다.

→  단, 어린아일 때는 요충이 원인일 수 있다.


6) 늘 배가 고픈 F씨

Q : 밥을 먹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배가 고파요. 아무래도 몸에 기생충이 있나 봐요.

A : 기생충은 하루에 밥풀 한두 톨이 고작입니다. 열 마리가 있다 해도 20톨인데, 그것 때문에 배가 고플까요, 설마?

Q : 그럼 저는 왜 배가 고픈 거지요?

A : 제가 보기에 A씨는 성장기입니다.

Q : 그, 그럴 리가요. 제 나이가 마흔셋인데.

A : 요즘 시대에 기생충 때문에 배가 고프다는 것보단 마흔셋에 성장기인 게 더 가능성이 큽니다.

→  이것만 기억하자. 기생충 다이어트가 말이 안 되는 건 기생충은 먹는 양이 워낙 적기 때문이다.

지은이 | 서민

기생충학과 교수이자 칼럼니스트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중 방송대본 ‘킬리만자로의 회충’을 쓰는 등 기생충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명하다가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기생충학계에 투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기생충학의 대중화’를 위해 인터넷 블로그, 딴지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등에 칼럼을 써 왔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으로부터 ‘파블로 선생의 곤충기 이후 최고의 엽기생물문학’이라는 평을 들었던 <대통령과 기생충>을 출간했고, <기생충의 변명>,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서민의 기생출 열점> 등을 펴냈다. 그의 글은 가벼운 듯하면서 풍자와 반전, 사회를 보는 건강한 시선을 묵직하게 담고 있어 열혈 독자가 많다. ‘선풍기 바람과 사망사고’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등의 칼럼은 특히 큰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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