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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지하실을 찾기 위해

<지하실에서>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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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3일 동안 쇠사슬에 묶인 채 지냈던 지하실 얘기로 시작하고 싶다. 아니면 내가 차를 타고 두 번이나 지하실로 간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 어느 따뜻한 초여름 날 나는 사복 경찰의 차 안에 타고 있었다. 경찰은 나의 진술 내용으로 보아서 지하실을 찾아낼 가능성이 90퍼센트 정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 지하실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내가 현장으로 가는 것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경찰이 찾아낸 지하실이 졸타우 부근에는 없었다. 지하실은 브레멘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보면서 나는 납치당했을 때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차 트렁크에 갇혔던 때로 기억이 되돌아갔다. 이렇게 다른 사람과 동승해 차를 타고 가는 것은, 당시 기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차는 상당히 오랫동안 달렸다. 트렁크에 갇혀서 처음 지하실로 실려 가던 시간도 이만큼 길었던 것 같다. 나는 경찰에게 물었다. “가서 그 지하실이 맞는지 확인만 하면 됩니까? 33일 동안 있었던, 창문은 널빤지로 막고 쇠사슬을 벽에 고정시킨 좁고 어두운 방이 맞다고 하면 됩니까? 그런 거라면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지하실을 발견하기는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지하실에는 창문이 하나뿐이고 두 번째 창문은 널빤지를 박아 놓아서 그럴싸하게 보이게끔 위장했다고 한다. 지하실의 세부 사항도 내가 경찰에 말한 내용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아들은 이걸 보고 뭐라고 할까? 아들은 요사이 경찰 업무에 대해 모조리 불신하는 일종의 비판론자가 되었다. “경찰은 절대로 지하실을 못 찾을 거예요. 납치범들이 얼마나 교활한 놈들인데!” 아마도 아들은 그곳이 내가 갇혀 있던 지하실이 아니라 범인들이 가짜 흔적을 남기려고 꾸며놓은 다른 지하실일 뿐이라는 의미에서 말했을 것이다. 납치범들이 두 번째로 마련해놓은 지하실이 존재한다는 믿기 힘든 경우가 사실이라면 과연 나는 진짜 머물렀던 방을 구분할 수 있을까?


매트리스 근처 회칠한 벽에 흔적이 남아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잠들기 전에 항상 그 벽을 바라보았고 그 흔적을 제대로 따라 그리려 했었다. 흔적은 일종의 뭉툭한 반달 모양이었고 크기는 두 손가락 끝이 들어갈 만했다. “지하실에는 표식이 있어요. 그게 있으면 바로 그 지하실이 맞습니다.”


나는 동행한 경찰에게 말하며 흔적의 장소를 자세히 설명했다. 동시에 훗날 있을 법원 심리와 피고 측 변호사가 할 수 있는 반론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곳의 회칠한 벽에 무언가 흔적을 남겨 놓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납치범들이 나중에 지하실 공간을 새로 회칠해버렸다면 그곳이 제가 갇혀 있던 지하실인지 확실하게 알아볼 수는 없겠네요.”


우리는 도착했다. 도착하기 직전 나는 눈을 감았다. ‘납치되어 도착했을 때와 느낌이 이렇게도 비슷하단 말인가? 하지만 이 느낌이 과연 정확할까?’ 차가 멈췄다. 우리는 내렸다. 집 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납치되어 끌려갔을 때와 걷는 느낌이 똑같은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집은 별장 같았다. 갈대로 엮은 지붕이었다. 큰 정원과 본채는 꽤 떨어져 있었다.


‘지하실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이유야 어찌 됐든 그 집은 아직 완공되지 않은 건축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높았다. 그리고 대기실. “이제 오른쪽으로 가면 지하실입니다.” ‘아니다. 그곳에는 주방이 있었다. 지하실은 왼쪽에 있었는데. 경찰이 왼쪽과 오른쪽을 헷갈린 건가?’ 내가 앞서갈 때 그는 여러 번 뒤를 돌아보았다. 행여 내가 길을 잘못 간다고 여기는 걸까? 줄에 묶이고 눈은 가려진 채 겁에 질린 상태에 놓여 있긴 했지만 감각은 어느 정도 유지한 사람일 경우, 쉽게 방향 감각을 잃을까? 아마도 쉽게 방향 감각을 잃을 것이다.


지하실로 가는 입구를 지나,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렇다. 바로 이 계단이다. 나무 계단, 가볍고 오른쪽으로 휜 계단. 나는 이 계단을 잘 안다. 계단을 내딛는 느낌과 그때 나는 소리를 잘 안다. “왼쪽으로 가면 있습니다.” 왼쪽으로 가니까 지하실이 나왔다. ‘나를 놀리는 거야 뭐야.’ 라디에이터는 내 생각과 다른 쪽에 있었고 지하실 공간 비율도 틀리고 방도 너무 작았다. 마치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당장 나가고 싶었다. “한 번 쭉 둘러보세요. 지하실 전체를 보세요.” ‘왜 그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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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가니 난방 시설이 있었다. 모퉁이를 도니까 왼쪽으로 공간이 하나 더 있었다. 그곳을 둘러본다. 문도 맞고 난방 장치도 맞고 공간 비율도 맞다. 여기 콘센트도 있다. 그런데 뭔가 상당히 작아 보인다. 천장 한가운데 전구가 달려 있다. 천장 높이도 맞다. 창문은 하나다. 창문 달린 벽에 구멍이 나 있고 대충 막아놓은 흔적이 보였다. 벽에 창문 가리개도 있었다.


‘쇠사슬을 고정해놓았던 곳은 어디 있나? 회칠을 해 놓은 곳도, 거기에 있나?’ 그래, 바로 거기다. 나는 손가락을 쭉 펴며 말한다. “내가 설명했던 장소가 바로 여기입니다. 이 지하실이 맞아요.” 맞다. 바로 저기에 쇠사슬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누워보았다. 맞다. 여기다. 그 자리에 회칠한 벽이 있고 그 벽에 뭉툭한 반달 모양의 흔적이 있다.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으로 흔적을 건드려본다. 맞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33일간 지내던 바로 그 공간이 맞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에 있던 경찰관들의 얼굴에 기쁨과 존경이 뒤섞인 표정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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