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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Dec 01. 2017

10. 나를 지탱해주는 것 (마지막 회)

<느리더라도 멈추지 마라>


건물에서 가장 견고한 돌은 기초를 이루는, 가장 밑에 있는 돌이다.
_칼릴 지브란


베토벤은 청력을 잃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듯 절망했다.

“함께 있는 사람은 멀리서 들려오는 플루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목동의 노랫소리를 나는 전혀 들을 수 없다. 이때 나는 절망에 빠져 스스로 죽어버리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의 회한은 구구절절 절망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는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직 예술만이 나를 지탱해줄 뿐이다.”

온통 죽음이 자신을 지배할 때 베토벤은 예술을 붙잡으며 스스로를 지켰다.

그렇다면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꿈일 수도 있고, 가족 혹은 연인일 수도 있겠다. 물론 어떤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지탱할 것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는 곧 삶의 희망이 없다는 뜻일 텐데, 그 절망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할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아직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젊은 청춘들의 입에서 이런 넋두리가 나온다는 점이다.

청춘의 푸르른 날이 절망의 짙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다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 고통과 좌절을 홀로 짊어지고 절망의 구렁텅이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절망에서 벗어나 나를 지탱해주는 그 무언가를 찾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여야 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고, 선택과 그 책임의 몫도 나 자신에게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 말을 홀로 세상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동료들이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못하지만 나를 외롭게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것이 근본적 꿈 아니던가.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하겠다’를 넘어 ‘기발한 아이디어로 혁신적인 기업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행복은 나만 누리는 자기만족이 아니다. 그 행복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누리는 행복이다. 같이 행복해지고자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것은 소명의식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소명의식이 나를 지탱해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지옥 같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다. 그는 여느 유대인처럼 가혹한 환경에서 지냈지만 소명의식 하나에 기댄 채 포기하지 않고 버텼다. 그 소명의식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여차하면 가스실로 끌려가 불귀의 객이 될지 모르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겠다니, 뜬금없는 이야기로 들릴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소명의식을 고집스럽게 지켰다.

수용소가 유대인들에게 매일 배급하는 물은 고작 한 컵 분량이었다.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리느라 얼마나 갈증이 났겠는가. 게다가 먹을 것도 형편없었으니 대부분의 수용자는 물 한 잔을 받자마자 바로 들이켰다. 하지만 빅터 프랭클은 물을 절반만 마셨다. 나머지 절반은 세수하는 데 썼다. 그는 깨진 유리 조각으로 면도도 했다. 또한 그는 생사가 불분명한 아내를 그리워하며 매일 가상의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 덕분에 그는 기어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를 지탱하는 것은 소명의식이고, 그 소명의식이 곧 자유의지이다. 빅터 프랭클은 말했다.
“한 인간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지만, 단 한 가지는 빼앗지 못한다.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는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절체절명의 강제수용소만큼은 아니겠지만 오늘날의 세상도 살기가 팍팍하다 못해 고달프기까지 하다. 그래서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조차 얻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현실이다 보니 소위 ‘갑질’의 작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갑질’에 늘 순응할 수는 없다. 내 인생을 지탱해주고,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선택하는 자유마저 비웃고 빼앗으려는 것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힘들고 어려운 세상이다. 그럼에도 나의 자유의지를 스스로 꺾어서는 안 된다. 나를 지탱해주는 자유의지, 그리고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키워야 한다. 그래야 좀 더 희망적인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청력을 잃어버렸음에도 예술의 끈을 놓지 않은 베토벤처럼 나를 지탱해주는 그 무언가를 찾자. 지금 나를 지탱해주는 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사랑하는 가족 혹은 연인, 소박한 소망 등이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살아가는 이유, 앞으로 가고자 하는 길,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소명의식, 이 모든 것을 꿋꿋하게 실천하겠다는 자유의지에 다시 한 번 나를 맡기자.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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