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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Dec 06. 2017

01. 대륙의 실수? 대륙의 실력! 샤오미

<중국 디자인이 온다>

4번의 실패를 겪은 40살의 남자가 있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 회사를 창업했다가 복제품 때문에 망했고 중국판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의 벽에 막혀 실패했다. 우여곡절 끝에 중국 유명 소프트웨어 업체 킹소프트의 창립 멤버로 재기했지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돌연 퇴사한다. 그리고 8명의 동료들과 창업을 앞두고 좁쌀(小米)로 죽을 끓여 먹다가 좁쌀이라는 뜻을 가진 회사를 만들어낸다. 그 회사가 바로 ‘샤오미(小米)’다. 처음에 샤오미는 이름 때문에 농업 관련 회사로 등록될 뻔 했으며, 대중에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11년 첫 번째 스마트폰을 출시했을 때 30만 대에서 이듬해 6112만 대로 무려 200배 이상 판매량이 급증하는 기염을 토해낸다. 그리고 불과 3년 만에 애플과 삼성 다음으로 스마트폰 점유율 세계 3위를 기록하였다. 기존 스마트폰과 다를 바 없는 성능을 갖고 있으면서 가격은 반값인 샤오미 스마트폰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것이다. 이례적인 중국 브랜드의 히트에 한국에서는 ‘대륙의 실수’라는 귀여운 애칭까지 붙었다.

그런데 이후 샤오미의 행보를 보면 다른 기업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보통 기업들은 한 품목이 히트를 치면 그 품목에만 집중하는 반면, 샤오미는 태블릿 PC, TV 셋톱, 공기청정기, 보조배터리, 체중계 등의 소형가전부터 스쿠터, 자전거, 캐리어 등 팬시상품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전기밥솥과 TV까지 만들어내며 일반 가전제품의 영역까지 도달했다. 이처럼 괜찮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으로 무장한 샤오미는 세계 시장에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중이다.

하지만 샤오미 디자인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 않다. 짝퉁 애플이라는 오명에서 알 수 있듯 샤오미의 디자인은 언뜻 보기에 애플과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 샤오미는 창립 초기에 애플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심지어 샤오미 CEO 레이쥔의 별명은 레이 잡스다. 그가 새 제품을 발표하는 행사에서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원 모어 씽(One more thing)”이라고 외치며 등장했기 때문이다. 금속 질감의 미니멀한 형태에 로고만 은은하게 덧대어 있는 샤오미의 태블릿 PC는 해당 애플 제품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과의 유사성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샤오미는 이런 표절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해당 브랜드들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레이쥔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스티브 잡스를 꼽았으며, 향후 5년 내에 무인양품과 같은 샤오미 홈을 만들 것이라 선언했다.

그렇지만 최근 샤오미는 디자인에 있어 예전과 다른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무인양품과 애플의 양분을 한껏 섭취하더니 이제는 조금 더 샤오미스러운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일단 가장 먼저 국내에서 열풍을 불러온 제품은 샤오미 체중계 <미 스케일(Mi Scale)>이다. 샤오미를 짝퉁 애플이라고 조롱하던 사람들도 샤오미 체중계만큼은 앞다투어 구매했다고 한다. 미려한 곡선에 순백색으로 처리된 이 체중계는 외관 디자인부터 깔끔하고 우아하다. 그리고 체중계에 올라가는 순간 하얀 LED 조명으로 수치가 뜨는데 미니멀한 체중계를 쓰는 것만으로도 왠지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샤오미 체중계 <미 스케일(Mi Scale)>



멀티탭 디자인 역시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 파는 USB 결합형 멀티탭은 기존 멀티탭에 USB 단자를 억지로 심어놓은 듯 어딘가 어색하고 궁상맞다. 그러나 샤오미에서 출시된 멀티탭은 레이아웃 디자인부터 스위치의 모양까지 깔끔한 모양새다. USB와 전원 단자는 서로 분리된 채로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고, 스위치를 켜면 붉은색 조명이 아닌 흰색 LED 조명이 켜진다.

샤오미 멀티탭



이는 분명 애플이나 무인양품에는 없는 샤오미만의 디자인 감성이다. 미니멀하고 심플한 외관은 앞의 두 브랜드와 유사하더라도 소소하지만 배려심 있는 샤오미만의 포인트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디자인 역시 급변하고 있다. 기존에 아이폰과 유사하다는 평을 들었던 샤오미 폰은 필립 스탁이라는 프랑스의 슈퍼 디자이너를 만나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샤오미의 디자인 철학과 필립 스탁의 디자인이 만난 스마트폰이 바로 <미 믹스(Mi Mix)>다. 이 스마트폰은 테두리가 없는 디자인으로 디스플레이가 화면을 가득 채워 몰입감이 뛰어나다. 검은색 광택을 내는 세라믹 소재는 옥(Jade) 같은 느낌을 냈고 18K 도금 링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을 추가했다.

샤오미 스마트폰 <미 믹스(Mi Mix)>



앞으로도 샤오미의 디자인 실험은 계속될 것이다. 미 믹스의 탄생으로 애플과 무인양품의 디자인에서 궤를 달리하는 샤오미 디자인의 현재를 목격할 수 있다. 실제 레이쥔은 홍콩 봉황 TV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레이 잡스라는 별명이 싫다. 샤오미는 이미 애플과 구글, 아마존을 합한 회사다”라고 발언했다.

그렇다면 왜 레이쥔은 샤오미를 애플과 구글, 아마존을 합친 회사라고 했을까? 애플의 디자인을 참고하고, 아마존의 전자상거래 모델을 따왔다면, 구글은 왜 타깃 모델이 된 것일까? 여기에 샤오미 디자인 철학의 핵심적인 답이 있다.

구글은 서비스를 무료로 배포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서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다. 구글에 접속하는 사람은 구글 브라우저 ‘크롬(Chrome)’을 이용해 드라이브, 포토, 메일 등 다양하고 파워풀한 서비스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는 샤오미가 쓰고 있는 전략과도 유사하다. 사람들은 샤오미의 스마트폰, TV, 체중계, 정수기 등 다양한 제품을 매우 저렴한 값에 구입한다. 그리고 이 모든 제품들은 샤오미의 공통적인 플랫폼을 공유한다. 어플리케이션 ‘미 홈(Mi Home)’으로 TV를 켜거나 실시간으로 정수기의 수질을 체크하는 식이다. 사람들은 미 홈에서 콘텐츠를 구입하고 새로운 아이템이 나오면 주저 없이 구매한다. 한마디로 샤오미 월드가 열리는 셈이다.

샤오미 전기밥솥 


샤오미 로봇청소기 


샤오미 보조배터리 



여기에서 샤오미의 미니멀한 디자인은 샤오미 월드로 손쉽게 가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디자인이 너무 아름다워 사람들이 디자인에만 열광해서도 안 되고, 디자인이 특이해 호불호가 갈려서도 안 된다. 즉 어느 누구라도 디자인에 구애받지 않고 부담 없이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미니멀한 디자인이라도 애플의 디자인 철학과는 차이가 있다. 스티브 잡스는 미니멀리즘을 완벽한 비례의 미학으로 승화시켜 마니아층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보편성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샤오미는 미니멀리즘을 누구의 취향도 타지 않는 보편적인 장치로 만들고 가격을 내려 모든 사람이 소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애플과는 다른 샤오미 디자인 철학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샤오미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맹자왈득천하유도(孟子曰得天下有道)하니
득기민사득천하의(得其民斯得天下矣)니라.
득기민유도(得其民有道)하니
득기심사득민의(得其心斯得民矣)니라.
득기심유도(得其心有道)하니
소욕여지취지(所欲與之聚之)요
소악물시이야(所惡勿施爾也)니라.

천하를 얻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백성을 얻는 것이다.
백성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민심을 얻는 것이다.
민심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백성이 원하는 것을 주고, 싫어하는 것을 주지 않는 것이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 샤오미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주고 천하를 얻고자 한다. 과연 뜻대로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앞으로 샤오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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