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부터 배우는 홍차>
중국의 티가 최초로 유럽에 전해진 것은 1610년이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중국의 마카오(澳門)와 일본 히라토(平戶) 항구에서 녹차를 대량으로 사들여 자바 섬의 항구인 반탐(Bantam)에 보낸 뒤, 그곳에서 물건을 선적하여 네덜란드의 헤이그로 운송하였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귀족이나 부유층들은 희귀한 동양의 다기와 찻잔에 관심을 보이면서 당시의 음식 문화에는 없었던 특유의 티 우리는 방식과 마시는 방법을 동양의 취미로 즐겼다. 또, 티는 품질이 매우 높아 당시에 금이나 은에 필적할 만큼 고가품이어서 은그릇이나 자기에 넣어 매우 소중하게 다루어졌다. 따라서 티를 접할 수 있었던 장소는 대부분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곳이었으며, 거기에 비싼 설탕과 고급 향신료인 사프란(saffraan)을 넣어 티의 가치는 더욱더 높아졌다. 상류층 사람들은 어깨를 펴고 점잔을 떨며 지금껏 본 적이 없었던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티는 처음에 네덜란드로 전해진 뒤에 영국으로 전해졌다.
티가 처음으로 등장한 곳은 커피 하우스였다. 1657년에 영국의 증권가인 익스체인지 앨리(Exchange Alley)에 있던 커피하우스, ‘개러웨이스’(Garraway’s)에 중국의 티들이 전시되었다. 티의 가격은 무게 1파운드(454g)당 당시의 영국화폐로 6~10파운드(£)로 상당히 비쌌다.
개러웨이스에서 티를 판매하는 방식은 매우 이색적이었는데, 맛과 향에 기준을 둔 것이 아니라 효능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1660년 당시 커피하우스의 주인은 무려 20항목에 이르는 티의 약효능을 광고 문구로 내걸었다. 그 내용은 서론에서 “동양의 티는 매우 비싸지만, 잘 마시면 건강을 확실히 유지하면서 장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고 쓰여 있고, 후반부에는 “두통, 불면, 담석, 권태, 소화 불량, 괴혈병, 기억 상실, 설사, 흉몽, 복통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 우유와 함께 마시면 폐병도 예방할 수 있어 만병통치의 약”이라 소개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커피하우스가 1650년에 최초로 생긴 이래, 그 수가 급속히 증가해 1683년에는 런던 시내의 커피하우스의 수가 3000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당시에 영국에 수입된 티는 ‘싱귤러’(singular)라는 녹차가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였고, 나머지는 산화차인 ‘보히’(Bohea)라는 홍차였다. 처음에는 녹차에 대한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영국의 물이 경도가 높은 경수인 영향을 받아, 결국에는 그 수요가 홍차로 이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