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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Dec 12. 2017

09. 나쁜 소식을 전할 때는 직접 만나라.

<후킹 토크>



감정을 증폭시키는 텍스트의 힘

진위 여부와는 상관없이 글만 읽는데도 머릿속에는 뭔가 특별한 장면이 떠오르고, 특정 감정이 솟구치진 않는가? 이게 바로 감정을 증폭시키는 텍스트의 힘이다.

이렇게 글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직접 말로 듣는 것보다는 글로 보는 것이 감정의 폭을 더 깊게 확대시켜 준다.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있다 싶으면 나 자신도 모르게 소설에 빠져들어 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을 스스로 그려보고, 표정도 상상하고, 순간순간 사건의 정황・배경 등을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읽는다. 똑같은 인물이 똑같은 스토리와 똑같은 결말을 낸다 할지라도 읽는 사람에게는 각각의 다른 세상에서 소설을 본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소설을 하나의 영화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닐까? 내가 생각했던, 상상했던 인물과 동떨어진 이미지의 배우가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흥미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똑같은 내용이지만, 소설과 영화라는 표현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엄청난 이질감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똑같은 내용이지만 글로 표현하는 의사전달과 직접 대화하는 방식의 괴리도 크다는 걸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왜 글과 말의 차이가 클까? 조금만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어떤 상대와 직접 마주 보며 대화를 하면, 언어 자체의 메시지와 함께 나와 상대의 비언어적 메시지가 함께 전달되기 때문에 상대의 의도를 비교적 정확하게 읽을 수 있고, 나 역시 상대에게 왜곡 없는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

“이따 점심 때 같이 밥 먹을래?”를 누군가와 직접 얼굴을 보면서 말을 할 때는 나의 표정이나 몸짓, 억양 등이 여과 없이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상대는 내 말의 의미를 쉽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이따 점심 때 같이 밥 먹을래?”를 문자로 보내거나 누군가로부터 받게 되면 그냥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왜 갑자기 나랑 밥을 먹자고 하지? 무슨 일이 있나?’ ‘나한테 무슨 부탁을 하려고 그러나?’ ‘나한테 서운한 게 있었나?’ ‘뭔가 좋은 일이 있나 보다’ ‘혹시 나한테 고백을?’ 등 온갖 상상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누구나 글・텍스트만 보면 내 의도와는 달리 상대는 나름대로 상상을 한다. 또 각자의 감정을 싣는다. 그래서 글은, 그 글을 보는 이의 감정과 상상을 부풀린다. 나의 의도와는 달리 말이다.

결국 직접 말을 하는 것보다는 텍스트로 의사소통을 할 때, 감정의 진폭이 훨씬 커진다. 그래서 좋지 않은 내용을 문자나 메일・전화 등으로 전달하면 좋지 않은 감정은 더 증폭된다. 반대로 기분 좋은 내용을 문자・메일・전화 등으로 전달하면 좋은 감정 역시 증폭된다. 

인터넷 댓글을 생각해 보자. 한 번 나쁜 내용의 댓글이 올라오면 비슷한 내용과 감정을 실은 댓글들이 들불처럼 삽시간에 달려온다. 물론 익명성이라는 특징도 있지만, 그것보다 악성 댓글에서 전달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덩달아 동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새해에 대표이사가 전체 사원에게 메일로 신년사를 보낸 적이 있었다. ‘작년 한 해 고생 많았고, 위기이긴 하지만 새해 좋은 기회도 많으니 더 열심히 일해 보자.’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긴 신년사 중 딱 한 줄의 문장 때문에 전 사원들이 공포에 빠졌다.

‘부진한 것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바로 ‘정리’라는 낱말 때문에 사원들은 ‘드디어 대표이사가 인원 감축의 칼을 빼든 것인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어느 부서가 0순위다’ 등 별의별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실제로 인원 정리와 관련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당시 대표이사는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혹시 사원들의 분발을 촉구하기 위해서 진짜 텍스트의 감정유발・증폭효과를 알고 일부러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상식적으로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빨리 정리하는 게 옳은 일이다. 직원들 역시 그런 의도라고 생각하면 별일 아니다. 그러나 모든 임직원들이 메일로 전달받았기 때문에 모두 각자 여러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좋은 쪽이든 아니든, 한 번 방향이 정해지면 무서운 기세로 감정은 폭발한다. 인터넷의 악성 댓글처럼, 미담 사례처럼 말이다.

이제 간단하게 정리하자.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할 때는 메일・문자가 아주 효과적이다. 좋은 일이어서 더욱 긍정적인 이미지가 증폭된다. 하지만 반대로 사과나 불만 대응 등을 할 때는 직접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는 것이 상대의 감정을 누그러트리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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