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이왕이면 명화로 초점을 맞춰볼까?

<내 아이를 위한 그림 육아>

by 더굿북
%E9%87%89%EB%9A%AE%EC%9C%B4%E7%A7%BB%EF%BF%BD.jpg?type=w1200



〈게르니카〉, 〈30〉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기가 까만 눈동자를 깜빡이며 가까운 세계를 눈에 담기 시작한다. 생후 3개월까지 아기는 색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기에게 세상은 초점이 맞지 않은 흐릿한 흑백 영상일 뿐이다. 아기는 눈앞에 있는 사물을 희미하게 봄으로써 세상과 인사한다. 아기에게 온 세상이 희미한 흑백으로 보인다는 것이 신기해서 흑백으로 보일 방 안의 이미지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산후조리원에서 아기를 데려와 초점 책과 모빌로 나름대로 꾸며둔 침대에 눕혔다. 아기는 서서히 초점을 맞추는 연습을 하는 것처럼 침대 옆에 펼쳐놓은 초점 책을 한참 동안 응시하기도 했다. 대상에 또렷하게 꽂힌 아기의 눈빛을 보면서 ‘이제 무언가 보이기 시작하는구나’라고 느꼈다.

그 무렵 생애 처음으로 세상을 보는 아이를 위해 엄마는 어떤 작은 정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매일 아이 옆에 펼쳐져 있는 초점 책의 단순한 기형이 조금 지루하기도 했던 차였다. 아! 하고 머리를 지나간 그림이 바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게르니카(Guernica)〉였다.

1.jpg?type=w1200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캔버스에 유채, 349.3×776.6cm, 1937 ⓒ 2017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물론 〈게르니카〉는 정서 발달에 긍정적이라고만 하기에는 그림자가 깊다. 스페인 내전 기간이었던 1937년, 스페인 북부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는 나치에 의해 폭격을 당하고 끔찍한 참상이 펼쳐지게 된다. 건물은 화염에 휩싸이고 거리에는 시체가 즐비했으며 학살당한 민간인만 1500여 명에 달했다. 그즈음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할 작품을 의뢰받은 피카소는 게르니카 학살 소식을 듣고 곧바로 작업에 착수하며 화가의 분노를 예술로 승화시키게 된다.

그렇게 완성된 〈게르니카〉는 그날의 참담한 풍경이 재현되듯 무채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아기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 통곡하는 사람, 죽어가는 말, 부러진 칼을 들고 짓밟힌 전사의 모습이 참혹하지만 피카소의 입체주의적인 표현 양식은 이러한 잔인함을 완화시키며 기하학적인 조형미를 전한다.

면이 구획되어진 기하학적 표현과 흑백의 색채가 인상적인 〈게르니카〉는 아직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에 작품을 프린트해서 아이 침대 옆에 붙여주었다.

소재가 어둡기는 해도 사실 〈게르니카〉는 참으로 희망적인 작품이다. 예술가가 사회 문제를 등한시하지 않고 자신만의 표현 도구를 통해 용기 있게 세상에 목소리를 낸 작품이 〈게르니카〉다. 현실의 부조리를 자신의 재능으로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에서부터 세상은 다시 옳은 길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피카소는 92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5만여 점의 작품을 남겼지만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게르니카〉로 꼽히는 것은 작품의 테크닉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흑백의 이미지가 얽힌 그림을 빤히 보고 있는 아이에게 정도를 향한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달라고 속삭였다. 우리 모두에게는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선물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에 내 아이가 〈게르니카〉를 그린 피카소처럼 용감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세상을 흑백으로 인지하는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또 다른 명화는 추상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작품 〈30〉이었다. 나는 모네의 작품을 보고 화가가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나와 마찬가지로 모네의 그림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칸딘스키의 일화가 묘한 공감을 일으켰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운 필치가 시대를 초월해 감각을 자극해왔다.


2.jpg?type=w1200 바실리 칸딘스키, 〈30〉, 캔버스에 유채, 81×100cm, 1937


특히 또렷한 흑백으로 이루어진 〈30〉은 초점을 맞추는 연습을 하는 아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었다. 음악을 연상시킬 만큼 역동적인 선과 단단한 화면 구성은 어떤 초점 책의 이미지보다 창의적이었다. 〈30〉은 30개의 정사각형 면이 모여 있는 구성이기 때문에 면을 확대해 보여주는 동시에 전체 작품도 보여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우선 작품 전체를 프린트한 이미지를 침대에 붙여 보여주었다. 그리고 작품에 구획된 대로 가로로 5등분한 이미지를 초점 책처럼 접어 다섯 권을 만든 다음 하루에 한 권씩 돌아가며 침대에 세워두기도 했다.

아이는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초점 책을 자주 응시했다. 아이의 눈빛이 칸딘스키 작품에 멈출 때마다 아이에게 “칸딘스키의 그림이야” 하며 작가를 일러주기도 했다. 아이가 엄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지만 아이의 시선만은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처럼 사랑스러웠다.

뭐든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에게 전해질까. 잠든 아기의 얼굴을 보면서 작품 면면에 담긴 칸딘스키의 선들처럼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람으로 자라주길 바랐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6. 공부의 신, 수면을 돕는 7가지 도구